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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Preah Vihear Temple 사건 (Cambodia v. Thailand, 1962. 6. 15. 판결) 본문

18. Preah Vihear Temple 사건 (Cambodia v. Thailand, 1962. 6. 15. 판결)

국제분쟁 판례해설/국제사법재판소(ICJ) 판례 2019. 10. 16.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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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사건 개요 및 배경

 

     이 사건은 캄보디아와 태국 국경에 위치한 Preah Vihear 라는 힌두교 사원의 영유권에 관한 분쟁이다. 캄보디아가 영유권 확인 소송을 청구한데 대해 태국이 ICJ 의 관할권을 부정하는 선결적 항변을 제기하여 관할권 존부 판정과 본안 판정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Preah Vihear 사원은 9 세기경 처음 건축되어 수 차례 증축되었으나 오래 전 폐사되어 현재는 유적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Dangrek 산맥이 평원과 횡으로 만나는 경계에서 평원 쪽으로 돌출된 삼각형 형태의 곶에 위치하고 있고 그 곶은 바로 아래 평원에서 솟아오른 절벽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태국은 1940 년 무렵부터 사원에 경비를 상주시키는 등 이 일대를 자신의 영토로 취급하였고 캄보디아는 1953 년 독립 후 태국에게 경비 철수를 수 차례 요청하였다.  양국은 1958 년 사원 지역 국경 획정을 위한 협상을 개시하였으나 결렬되었다. 이에 캄보디아는 1959 년 10 월 6 일 Preah Vihear 사원 영유권 소재를 판정하여 달라는 재판을 ICJ 에 청구하였다. 재판 청구의 근거는 캄보디아와 태국이 각각 1957 년 9 월 9 일과 1950 년 5 월 20 일 기탁한 ICJ 강제 관할권 수용 선언이었다. 태국은 1950 년 5 월 20 일 자국의 선언 내용은 국제상설재판소(PCIJ)의 관할권을 수용한 선언을 갱신한다는 것이었는데 Aerial Incident 사건에서 PCIJ 관할권 수용 선언이 ICJ 수용 선언으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시되었으므로 자신의 1950 년 5 월 20 일 선언은 법적으로 무효이며 따라서 태국은 ICJ 관할권을 수용한 바가 없다고 주장하고 이 사건에 대해 ICJ 는 관할권이 없다는 선결적 항변을 제기하였다.

 

나. 주요 쟁점 및 판결

 

1) 선결적 항변-태국의 강제 관할권 수용 선언의 유효 여부

 

     태국은 1929 년 9 월 20 일 PCIJ 의 강제 관할권을 10 년 유효 기간으로 수용하였으며 이는 1940 년 5 월 3 일 다시 10 년 기한으로 갱신되었다. 1950 년 5 월 20 일 태국의 ICJ  관할권 수용 선언은 이 PCIJ 강제 관할권 수용 선언을 1950 년 5 월 3 일부터 다시 10 년간 갱신한다는 내용으로 기술되어 있었다65. PCIJ 는 1946 년 4 월 19 일 해산되었으며 태국은 1946 년 12 월 16 일 UN 에 가입하였다. ICJ 헌장 36(5)조 66는 발효 중인 PCIJ 의 강제 관할권 수용 선언은 ICJ 헌장 당사국(즉 UN 회원국)간에는 ICJ 강제 관할권을 수용한 것으로 간주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ICJ 는 1959 년 5 월 26 일 Aerial Incident 사건 판결에서 이 조항은 1945 년 6 월 UN 헌장을 성안한 샌프란시스코 회의에 참석한 UN 원 회원국간에 적용되는 것이며 불가리아와 같이 PCIJ 강제 관할권을 수용하기는 하였으나 PCIJ 가 해산된 이후 UN 에 가입한 국가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이 불가리아의 PCIJ 강제 관할권 수용 선언을 근거로 불가리아를 제소한 해당 사건에 대해 ICJ 는 관할권이 없다고 결정되었다.

 

이 결정을 근거로 태국은 이 사건에 있어서 ICJ 는 관할권이 없다는 주장을 전개하였다. 태국은 PCIJ 관할권 수용을 갱신함으로써 1950 년 5 월 20 일 ICJ 관할권을 수용한 것이나 Aerial Incident 사건 판결로 인해 1950 년 5 월 20 일 선언이 무의미하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자신이 이 선언을 통해 ICJ 의 관할권을 수용할 의사가 있었고 수용했다고 믿고 있었으나 Aerial Incident 사건 판결로 인해 자신의 이러한 의도는 실행될 수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는 의견을 개진하였다. 불가리아는 1955 년 12 월 14 일 UN 에 가입하였으며 불가리아의 PCIJ 강제 관할권 수용 선언은 1946 년 4 월 19 일 PCIJ  해산과 함께 무효가 되었다고 판시되었으므로 동일한 논리상 1946 년 12 월 16 일 UN 에 가입한 태국의 PCIJ 강제 관할권 역시 1946 년 4 월 19 일부로 이미 무효되었고 따라서 ICJ 는 이 사건에 대해 관할권이 없다는 것이다. 1950 년 5 월 20 일 선언은 이미 무효가 된 PCIJ 강제 관할권을 갱신한다는 내용이므로 실행할 수 없다고 강조하였다. 재판부는 태국의 논리를 수용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우선 ICJ 판결은 해당 사건 당사자에 대해서만 구속력이 있다는 ICJ 헌장 59 조67를 들어 Aerial Incident 사건 판결이 그대로 이 사건에 적용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또한 Aerial Incident 사건 판결은 PCIJ 해산 후 ICJ 헌장 당사국(즉 UN 회원국)이 된 국가에게는 PCIJ 강제 관할권 수용 선언이 ICJ 강제 관할권 수용 선언으로 전환된다는 36(5)조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지 어떠한 형태나 방식의 전환이 모두 발생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라고 언급하였다. 불가리아는 PCIJ 관할권 수용 선언을 통해 ICJ 관할권도 수용한다는 취지로 해석될만한 아무런 조치도 취한 바 없으나 태국은 1950 년 5 월 20 일 신규의 자발적인 행위를 취함으로써 불가리아와는 상황이 상이하다는 점도 지적하였다.  재판부는 Aerial Incident 사건 판결대로 태국의 PCIJ 관할권 수용 선언이 ICJ  36(5)조에 의거하여 ICJ 관할권 수용 선언으로 전환되지 않았다고 보았다. PCIJ 는 이미 1946 년 4 월 해산되었고 태국의 PCIJ 관할권 수용 선언도 1950 년 5 월 6 일부로 기한 만료되었으므로 1950 년 5 월 20 일 선언 당시 태국은 ICJ 의 강제 관할권에 전혀 구속받지 않았고 향후 이를 수용할지 여부에 대해 전적으로 자유로운 상태였다고 환기하였다.

 

재판부는 이러한 상황에서 태국이 UN 사무총장에게 1950 년 5 월 20 일자 선언을 스스로 제출하였고 이는 ICJ 헌장 36(5)조가 적용되지 않는 신규이고 별도로 독립된 문건이라고 보았다. 태국의 PCIJ 관할권 수용 선언은 이미 1950 년 5 월 6 일 기한 만료되었으므로 발효 중인 선언에 적용된다는 규정상 36(5)조가 적용되지 않으며 1950 년 5 월 20 일자 선언은 36(5)조가 아니라 36(2)~(4)조가 적용되는 선언이고 이들 조항이 적시하고 있는 바와 같이 ICJ 의 강제 관할권을 수용하는 것이라고 설시하였다. 태국도 1950 년 5 월 20 일자 선언이 ICJ 강제 관할권을 수용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점은 부인하지 않았다. 다만 Aerial Incident 사건 판결에 의해 자신이 36(5)조를 원용할 수 없고 자신의 PCIJ 관할권 수용 선언은 이미 무효가 되었으므로 무효가 된 선언을 갱신한다는 1950 년 5 월 20 일자 선언은 효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1950 년 5 월 20 일자 선언은 이러한 실수를 포함하고 있으며 따라서 실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무효된 문건의 갱신 가능 여부, 문건 효력 발생을 금지하는 실수의 심각성 여부가 쟁점이 아니라 5 월 20 일자 선언의 효력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쟁점이라고 정리하고 태국이 인정하고 확인한 바와 같이 5 월 20 일자 선언은, 비록 법률적으로 유효하게 구체화되었는지와는 무관하게, 강제 관할권을 수용하려는 것을 의도하고 있었으며 당시 이미 PCIJ 는 해산되어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강제 관할권은 ICJ 의 강제 관할권을 의미한다는 것을 태국이 인지하지 못했을리 없다고 보았다.

 

당사자의 의사를 법적으로 유효하게 하기 위해서는 유언장, 결혼 증서와 같이 일정한 형식과 절차가 필요하기도 하나 이는 해당 형식과 절차를 규정해놓은 국내법에서 주로 발생하는 것이며 국제법에서는 특정한 형식이 규정되어 있지 않은 이상 당사자의 의사가 특정 행위나 문건의 효력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재판부는 설시하였다. 정해진 형식이 없을 경우 당사자는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형식을 선택하는데 있어 자유롭다고 첨언하였다. 재판부는 ICJ 강제 관할권 수용에 있어 요구되는 절차는 수용 선언을 UN  사무총장에게 기탁하라는 것일 뿐(ICJ 헌장 36(4)조 68 )이므로 그 이상의 수용 선언의 형식과 절차에 대해서는 당사자가 결정할 문제라고 언급하였다(관할권 판결문 30~32 page).

 

2) 선결적 항변-강제 관할권 수용 선언의 해석

 

    재판부는 이상과 같은 점을 고려하여 태국의 1950 년 5 월 20 일자 선언의 진정한 의도와 효과를 해석하여야 하며 이를 위해 결국 조약 해석의 원칙에 따라 동 선언에 사용된 단어의 자연스럽고 통상적인 의미에 따라 해석해야 한다고 보았다. 재판부는 Anglo-Iranian Oil company 사건 판결문에서 ICJ 는 ‘통상적인 의미’라는 원칙이 단어나 문구를 항상 순수한 문언적인 방식으로 해석하라는 것은 아니라고 확인한 바 있으며69 Polish Postal Service 에 대한 권고적 의견에서 PCIJ 는 이 원칙이 사리에 맞지 않고 얼토당토 않은 결론에 이르게 될 경우 적용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밝힌 점을 환기하면서 태국의 1950 년 5 월 20 일자 선언을 문언적인 방식으로 해석할 경우 이미 해산된 PCIJ 관할권 수용을 갱신한다는 것이 되므로 ICJ 강제 관할권을 언급한 36(4)조와 상충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36(4)조의 '이러한 선언(such Declration)'은 ICJ 강제 관할권을 규정한 36(2), (3)조의 선언을 의미하고 태국은 1950 년 5 월 20 일 선언을 36(4)조에 의거하여 UN 사무총장에 기탁하였으므로 1950 년 선언을 PCIJ 관할권 수용 선언을 갱신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상충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PCIJ 가 해산되었음을 태국도 알고 있었으므로 36(4)조 규정대로 선언서를 UN 사무총장에게 기탁한 것은 ICJ 의 강제 관할권을 수용한 것이라고 확인하였다. 재판부는 1950 년 5 월 20 일 선언 당시 태국은 자신의 PCIJ 관할권 수용 선언이 이미 기한 만료된 것도 알고 있었으므로 강제 관할권을 수용할 그 어떤 의무부터도 자유로운 상태였으며 이러한 상태에서 태국이 새롭게 자발적으로 제출한 선언은 ICJ 강제 관할권을 수용하려는 의사가 분명하다고 설파하였다(32~33 page).


재판부는 이러한 의사가 일정한 흠결에 의해 무효화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확인하였다. 재판부는 특정 행위를 무효화하기 위한 흠결은 의무적인 법적 요건을 준수하지 않을 정도의 심각한 것이어야 할 것이나 이 사건의 경우 당사국의 명백한 의도를 무효화할 정도로 해당 흠결이 사안의 핵심에 영향을 미쳤다거나 의무적인 법적 요건과 상치된다고 볼 수 없다고 단언하였다. 이상을 토대로 재판부는 1950 년 5 월 20 일 태국의 선언은 ICJ 헌장 36(2)조, 36(4)조에 의거하여 ICJ 강제 관할권을 수용하는 선언에 해당한다고 정리하고 태국이 ICJ 강제 관할권을 이미 수용하였으므로 ICJ 는 이 사건에 대해 관할권을 갖는다고 판시하였다(34  page).

 

3) 캄보디아 – 태국 국경 획정 과정

 

     1953 년 독립하기 전까지 캄보디아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일부였다.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는 태국(당시는 시암 왕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었으며 1904 년부터 1908 년까지 프랑스와 태국은 국경을 획정하기 위한 교섭을 전개하여 1904 년 2 월 13 일자 국경 획정 조약과 1907 년 3 월 23 일자 국경 획정 조약을 체결하였다. 1904 년 조약 1 조는 양국간 국경 획정 원칙을 특정 구간별로 규정하고 있었다. Preah Vihear  사원이 소재한 구간은 分水線을 기준으로 국경을 획정한다고 규정되었다. 동 조약 3 조는 구체적인 국경 획정(delimitation)은 양국 대표로 구성된 국경 획정 공동 위원회가 수행한다고 규정하였다.

 

국경 획정 위원회는 1905 년 1 월 1 차 회의를 개최하여 국경 획정 작업을 개시하였으며 Preah Vihear 사원이 소재한 구간(Dangrek range)은 1906 년 12 월 2 일 개최된 회의에서 논의되었다. 이 날 회의록에 따르면 국경 획정 위원회는 Dangrek 구간은 실제 측량단을 파견하여 실사하기로 하였다. 측량단은 예정대로 서쪽에서 동쪽 방향으로 출발하였으며 Preah Vihear 사원을 방문하였으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국경선이 획정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달리 기록이 없었다.  1906 년 12 월 2 일 회의시 국경 획정 위원회의 프랑스측 대표단 중의 한 명이 Dangrek  구간을 동쪽부터 서쪽 방향으로도 탐사하기로 결정되었으며 그는 다음날 출발하였다. 재판부는 국경 획정 위원회가 Dangrek 구간의 국경선을 획정하려는 의사가 분명히 있었고 이를 위해 필요한 절차를 채택한 것은 명백하다고 보았다.

 

1907 년 1 월 주 태국 프랑스 공사는 국경 획정위 프랑스측 위원장으로부터 국경 획정 작업이 차질 없이 마무리되어 국경선이 확정적으로 획정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프랑스 외교부에 보고하였다. 1907 년 2 월 20 일 국경 획정 종합 보고서를 통해 프랑스측 위원장은 Dangrek 지역 국경선은 어려움 없이 획정하였다고 기재하였다. 재판부는 이상을 감안할 때 국경선이 측량을 통해 획정된 것은 분명해 보이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누구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획정되었는지는 더 이상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고 확인하였다. 1907 년 2 월 23 일 주 태국 프랑스 공사가 프랑스 외교부에 국경선을 표시한 지도가 금명간 제출될 것이며 국경 획정 위원회 전체 회의가 1907 년 3 월 15 일 개최될 예정이라고 보고한 것으로 보아 재판부는 당시 국경 획정 위원회가 국경 획정 작업을 마치고 측량단의 보고서와 국경을 표시한 지도를 기다리고 있던 것으로 추론하였다. 그러나 전체 회의는 개최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프랑스와 태국은 1904 년 조약에 포함되지 않은 지역의 국경을 획정하기 위해 또 다른 국경 조약을 1907 년 3 월 23 일 체결하였다.

 

즉 국경 획정 위원회가 실제 지도상에 표시된 국경선을 전체 회의에서 승인하고 확정한 기록은 없었다. 1907 년 조약에 따른 2 차 국경 획정 위원회가 Preah Vihear 사원 인접 지역의 국경을 논의한 회의 기록에는 사원 인근의 이미 획정된 기존의 국경선과 연결한다는 기술이 있었으나 기존의 국경선이 무엇이고 어떻게 획정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2차 국경 획정 위원회의의 주 과제는 1904 년 조약에 포함되지 않은 지역의 국경을 획정하는 것이기는 하나 부속서에는 Preah Vihear 사원이 속한 구간을 포함하여 여러 구간의 국경도 필요시 획정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는 점을 근거로 재판부는 만일 사원이 속한 구간의 국경이 획정되어 있지 않았다면 2 차 국경 획정 위원회가 이를 획정하였을 것인데 그러한 사실이 없으므로 해당 구간 국경은 2 차 위원회 활동 당시 이미 획정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보았다.

 

실제 국경선은 지도에 표시되어야 할 것이나 당시 태국은 기술력이 부족하여 프랑스측에 지도 작성을 위임하였다. 1, 2 차 국경위원회 회의록에 이 같은 요청이 기재되어 있었으며 실제로 프랑스 측량 기사들이 작성한 11 개 도엽의 지형도가 1907 년말에 작성되어 인쇄, 출간되었다. Preah Vihear 사원이 위치한 구간 지도는 이 사원 일대가 캄보디아 령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캄보디아는 이 사건에서 이 지도를 입장서의 첨부물로 제출하였다(이하 Annex I 지도). 캄보디아는 이 지도를 근거로 Preah  Vihear 사원의 영유권을 주장하였다. 

 

캄보디아의 재판 청구 요지는 5 개항으로서 i) Annex I 지도상의 경계가 1904 년 조약에 의해 설치된 국경 획정 위원회가 확정한, 조약 성격을 갖는 국경이며, ii) 사원 주변 지역의 국경은 Annex I 지도에 표시된 경계이고, iii) 이 사원은 캄보디아 영토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iv) 태국은 사원 내 무장 병력을 철수할 의무가 있고, v) 조각상 등 탈취해 간 문화재를 반환해야 한다고 판시하여 달라는 것이었다. 태국은 이 지도는 국경 획정 위원회가 승인하고 확정한 것이라는 증거가 없으며 따라서 구속력이 없다고 일축하였다. 1904 년 조약 1 조상 Preah Vihear 사원 소재 구간은 분수선을 국경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었으나 Annex I 지도에 표시된 국경선은 실제 분수선과 일치하지 않았다.

 

이 사원은 절벽 위에 있었고 분수선은 절벽과 아래 평지가 만나는 선이 될 것이므로 분수선대로 국경선을 표시했다면 사원은 태국 령이 되었을 것이다. 태국은 실제 분수선이 아닌 선을 국경선으로 표시한 Annex I 지도는 심각한 오류를 포함하고 있으며 이는 국경 획정 위원회의 재량을 일탈한 것이므로 무효라고 주장하였다. 태국은 또한 자신은 Annex I 지도나 지도에 표시된 국경선을 최소한 Preah Vihear 사원에 관한 한 수용한 적이 없으며 설사 수용하였다 하더라도 (국경선이 실제 분수선이라고) 오인한 것이므로 이 지도는 태국을 구속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4) 태국의 Annex I 지도 승인 여부

 

     재판부는 국경 획정 위원회가 공식 회의를 통해 Annex I 지도를 채택하고 승인하지는 않은 점은 인정하였다. 지도 제작이 완료되기 전에 1 차 국경 획정 위원회가 해산되고 1907 년 국경 조약 체결과 그에 따른 2 차 국경 획정 위원회의 구성 과정에서 이 문제가 큰 주목을 받지 않고 유야무야 처리된 것으로 짐작하였다. 그러나 지도 자체는 국경 획정 위원회가 파견한 측량 기사들의 실사 결과를 토대로 작성되었고 태국의 요청에 의해 프랑스가 인쇄, 출간하는 등 일정 정도의 공식적인 지위를 갖고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확인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지도가 출간 당시부터 구속력이 있었다고 판단하지는 않았다. 재판부는 태국은 지도가 출간된 후 아래에 기술하는 일련의 행동을 통해 이 지도를 구속성이 있는 것으로 수용하였다고 보았다.

 

태국은 1904 년 조약 1 조에 의거하여 Dangrek 구간 국경은 분수선을 기준으로 해야 하나 이를 일탈하여 Preah Vihear 사원을 캄보디아 영역 내로 표시한 것은 국경 획정 위원회의 재량을 현저히 일탈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재판부는 국경위원회가 승인한 Dangrek 구간 국경이 없다거나 분수선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문제는 쟁점이 아니며 양국 정부가 분수선과 상이하게 표시된 국경선을 수용했는지가 핵심 쟁점이라고 보았다.  국경위원회는 태국 주장처럼 Dangrek 구간 경계를 승인, 채택하지 않았으므로 국경위원회의 재량권 일탈 여부 역시 핵심 문제는 아니라고 지적하였다. Annex I 지도를 포함한 11 개 도엽의 지도는 국경 획정 위원회 양국 위원을 포함하여 양국 정부 및 주요 국가 지리 관련 단체에 전달되었다. 재판부는 이 지도가 국경 획정 작업의 결과물로서 제출된 것은 주 프랑스 태국 공사가 1908 년 8 월 20 일 외교부에 국경 획정 위원회 태국 위원단이 프랑스 위원단에게 작성을 위탁하였던 지도가 전달되어 와서 본부로 송부한다고 보고한 점에 비추어 명백하다고 보았다.

 

재판부는 만일 이 지도에 대해 태국이 동의할 수 없었다면 이의를 제기하였을 것이나 지도 접수 후 수년 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은 이 지도를 용인한 것이라고 이해했다. 더욱이 Annex I 지도 우상단에는 Dangrek-Commission of Delimitation between Indo-China and Siam이라고 적시되어 있었고 국경 획정 위원회 태국측 위원단에게 이 지도가 전달되었으므로 만일 이 지도상의 국경선이 위원회의 결정 사항과 상이하였다면 태국측이 이를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다고 지적하였다. 더구나 그 지도는 190 년 12 월 2 일 해당 지역 측량을 위해 파견하기로 결정되어 그 다음 날 출발한 프랑스측 위원에 의해 작성된 것이었다.

 

태국 내무부 장관은 프랑스측의 지도 제작에 사의를 표하고 태국의 각 지방 주지사에게 송부하기 위해 추가분을 주 태국 프랑스 공사에게 요청하기도 하였다. 1909 년 3 월 1, 2 차 국경 획정 위원회의 작업을 토대로 보다 간편한 지도책을 제작하기 위해 양국 대표가 참가하는 위원회가 파리에서 소집되었을 때에도 태국측은 Annex I 지도상의 경계 표시에 대해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러한 태국측의 조치나 태도를 근거로 태국은 사후 행동으로서 해당 지도를 인정(acknowledgment through conduct)한 것이라고 보았다 (본안 판결문 23~24 page). 태국은 프랑스로부터 접수한 지도를 본 관리들은 지도에 관한 전문 지식이 없는 하급 관리이고 Preah Vihear 사원의 중요성에 관해 알지 못했다고 항변하였으나 재판부는 외교부 장관, 내무부 장관, 국경 획정위원 등을 하급 관리라고 볼 수 없고 설사 그렇다 하더라고 태국은 그 사실로부터 국제법상의 아무런 면책을 받지 못한다고 일축하였다.

 

재판부는 태국이 제출한 기록상 1899 년에 태국의 왕자가 고위 관리 수십명을 대동하고 Preah Vihear 사원을 재발견하였다고 크게 선전한 것이 Annex I 지도가 출간되기 불과 9 년 전의 일이므로 고위 직책에 있는 태국 인사들이 이 사원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아울러 국경 획정 당시 인지하지 못했던 중요성을 후에 인지하였다는 이유로 국경 변경을 주장할 수 없다고 언급하고 이 사원의 중요성을 몰랐다는 태국의 항변을 기각하였다(25 page). 태국은 Annex I 지도상의 국경이 실제 분수선과 상이하게 그려진 것을 알아채지 못한 것은 실수라고 항변하였다. 재판부는 실수가 이를 주장하는 자의 행위로 발생한 것이거나, 충분히 회피할 수 있었거나 인지할 수 있었을 상황이었다면 실수를 이유로 기존의 동의를 철회할 수 없다는 것이 법원칙이라고 전제하였다. Annex I 지도를 접수하여 검토한 사람은 다름 아닌 국경 획정의 임무를 부여받은 태국측 위원들이었고 Annex I 지도상의 경계가 분수선과 합치되지 않는다는 것은 해당 지형상 자명하여 누구나 알아볼 수 있었으며 Preah Vihear 사원 위치는 별표로 특정되어 국경선 바깥에 존재한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태국측은 프랑스가 작성한 지도를 별도의 조사 없이 접수하였다고 지적하고 이러한 상황에서 태국측의 실수 항변을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26 page).

 

재판부는 태국이 분수선과 상이하게 표시된 Annex I 지도상의 국경을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여러 사례를 나열하기도 하였다. 1934-35 년간 태국은 Dangrek 구간에 대한 실제 측량 조사를 실시하였고 이후 Preah Vihear 사원이 태국령으로 표시된 지도를 제작하였음에도 불구하고 Annex I 지도나 기타 Preah Vihear 사원이 캄보디아로 표시된 지도를 공적인 목적으로 사용하였다. 1937 년 태국과 프랑스는 우호통상항해조약을 체결하면서 기존 국경선을 재확인하였는데 이를 위해 태국 왕립 지리원이 제작한 지도에도 이 사원이 캄보디아에 위치한 것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태국은 이 조약 협상 과정 중 사원 영유권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1940 년~41 년간 프랑스와 태국은 국경 문제를 둘러싸고 전쟁을 벌였다. 194년 양국은 평화 협정을 체결하고 전후 처리 위원회를 구성하여 국경 문제를 포함한 제반 사항을 논의하기로 하였다. 태국은 여러 지역의 국경 문제를 제기하였으나 Preah Vihear  사원에 대해서는 아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러한 사례와 태국의 행위를 볼 때 태국은 분수선과 상이하게 획정된 국경을 수용하였기 때문이라고 추론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이해하였다(28~29 page).

 

1930년 태국 왕자가 Preah Vihear 사원을 방문하여 프랑스 국기가 게양된 가운데 인근 캄보디아 프랑스 거주민 대표 등으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해당 사원이 캄보디아 령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었으나 태국은 아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으며 태국 왕자는 귀환한 후 프랑스가 거주민 대표를 통해 초청국으로 행동한 것을 수용하는 듯한 감사 서한을 발송하기도 하였다. 재판부는 이를 Preah Vihear 사원에 대한 프랑스(즉 캄보디아)의 영유권을 묵시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프랑스 정부는 이 사원에 태국 경비가 상주 중인 것을 알게 되어 1949년~50 년간 3 차례 공한을 태국 정부에 발송하여 해당 사원이 프랑스(캄보디아) 령인 근거를 제시하고 사원이 캄보디아에 위치한 것으로 기재된 태국이 제작한 지도를 첨부하면서 경비 철수를 요구하였다. 태국은 아무 회신도 하지 않았다. 1953 년 캄보디아는 독립한 후 여전히 태국 경비가 사원에 상주 중임을 인지하고 수 차례 공한을 태국 정부에 발송하여 경비 철수를 요구하였다. 특정 시한까지 퇴거하지 않을 시 군대를 파견하겠다고도 위협하였으나 실제 파병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1958 년 양국은 이 문제 협의를 위해 회동하였으나 협상은 결렬되었고 캄보디아는 이 문제를 ICJ 에 제소하게 되었다.

 

재판부는 이와 같은 태국의 행동으로 볼 때 태국은 Annex I 지도상의 국경을 수용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제기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재판부는 태국이 이미 1908 년 국경 획정 위원회의 작업 결과로서 Annex I 지도를 수용하고 지도상의 경계를 국경으로 인정하였다고 판단하였으며 그 이후의 태국의 행동을 근거로 판단할 때에도 역시 태국은 문제의 경계를 국경으로 수용하였다고 확인하였다.

 

5) 오인으로 인한 수용

 

     태국은 만일 태국이 Annex I 지도 경계를 국경으로 수용하였다면 이는 해당 경계가 실제 분수선과 일치한다고 잘못 이해하였기 때문이라고 항변하였으나 재판부는 만일 그랬다면 Preah Vihear 사원은 합법적으로 태국 영토 외에 위치하는 것으로 태국이 이해하였어야 하며 태국의 일련의 행동은 태국이 합법적이라고 인지한 국경을 의도적으로 위반하였다는 것이 된다고 지적하고 태국은 오인으로 인한 Annex I 지도 수용 주장을 제기할 수 없다고 단언하였다. 설사 오인 수용 주장을 용인한다 하더라도 1934-35 년 측량 후 Annex I 지도 경계와 분수선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므로 그 이후로는 오인을 할 수 없었다고 지적하였다.

 

6) 조약 해석상의 수용

 

     재판부는 설사 Annex I 지도상의 경계가 실제 분수선과 일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해당 지도가 1904 년, 1907 년 조약 당사국에 의해 수용되었으므로 조약의 일부로서 확정된 것이라고 보았다. 재판부는 이 사건을 통상적인 조약의 해석 문제로 심리한다 하여도 결과는 동일하다고 확인하였다. 즉 재판부는 국경 획정 조약의 목적은 안정성과 최종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서 만일 해당 조약의 규정과 합치되지 않는 점이 발견될 때마다 항상 이용가능한 절차를 통해 수정을 요구할 수 있다면 최종성과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재판부는 이 사건 해당 조약이 분수선 등을 기준으로 국경을 획정하라는 원칙 조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경 획정 위원회 설립을 통한 국경 획정 조항을 둔 이유는 원칙 조항만으로는 국경의 확정성과 최종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며 이를 확보하기 위해 지도상의 경계 획정에 의존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재판부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와 태국간의 긴 국경으로 인해 양국은 각종 분규와 대립을 겪었으며 1904 년, 1907 년 조약은 이러한 긴장 상태를 종료하고 확정성과 최종성에 근거한 국경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고 정리하였다. 1904 년 조약 1 조의 분수선 원칙은 경계선을 일반적인 용어로 객관적으로 서술하기 위한 편의에 불과하며 지도상에 획정된 경계선이 최종성이라는 측면에서 훨씬 중요한 점을 감안하면 양국이 분수선에 대해 특별한 중요성을 부여할 이유가 없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조약 해석의 측면에서 볼 때에도 지도상에 표시된 경계가 우선한다고 판단하였다(34-35 page).

 

7) 영유권 판결

 

    관할권 판정문에서 재판부는 이 사건의 성격은 사원 소재 지역의 영유권 분쟁이라고 규정하였다. 재판부에 제출된 분쟁 대상은 사원 지역의 영유권에 관한 견해 차이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 지역의 양국 국경을 확인해야 하나 제출된 지도 등 각종 자료는 재판부가 이 사건 분쟁에 관한 결정의 논거를 찾기 위한 범위 내에서만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해당 사원 영유권 소속 국가를 밝히는 것이지 양국간의 국경을 획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를 확실히 한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본안 심리에서 재판부는 캄보디아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청구, 즉 Annex I 지도가 1904 년 조약상의 법적 지위를 갖고 있으며 사원 지역의 양국 국경은 Annex I 지도에 표시된 경계라고 판결하여 달라고 청구한 데 대해서는 판단의 논거를 제공하는 범위 내에서 고려할 것이나 판결 주문에서 처리해야 하는 시비(claim)으로는 고려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판단하지 않았다. 캄보디아의 여타 3 개 청구 사항, 캄보디아의 사원 영유권 보유, 태국군 철수 의무, 문화재 반환 의무에 대해서는 위에서 심리한 바를 토대로 캄보디아의 입장을 지지하였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판결 주문에서 i) Preah Vihear 사원은 캄보디아 주권 하의 영토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ii) 태국은 사원 또는 캄보디아 영토 내의 사원 주변에 주둔시킨 군, 경찰, 경비 또는 관리인을 철수해야 할 의무가 있고, iii) 태국은 사원에서 반출한 각종 문화재를 캄보디아에게 반환할 의무가 있다고 확인하였다.


(작성자 : 김승호 신통상질서전략실장)


1) 5. In accordance with the provisions of Article 36, paragraph 4, of the Statute of the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1 have now the honour to inform you that His Majesty's Government hereby renew the declaration above mentioned for a further period of ten years as from May 3, 1950, with the limits and subject to the same conditions and reservations as set forth in the first declaration of Sept. 20, 1929.

 

2) 5. Declarations made under Article 36 of the Statute of the Permanent Court of International Justice and which are still in force shall be deemed, as between the parties to the present Statute, to be acceptances of the compulsory jurisdiction of the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for the period which they still have to run and in accordance with their terms.

 

3) 59. The decision of the Court has no binding force except between the parties and in respect of that particular case.

 

4) 4. Such declarations shall be deposited with the Secretary-General of the United Nations, who shall transmit copies thereof to the parties to the Statute and to the Registrar of the Court.

 

5) But the Court cannot base itself on a purely grammatical interpretation of the text. It must seck the interpretation which is in harmony with a natural and reasonable way of reading the text, having due regard to the intention of the Government of Iran at the time when it accepted the compulsory jurisdiction of the Court(ICJ Report 1952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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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산업통상자원부 김승호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이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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