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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Frontier Dispute (Burkina Faso/Mali) 사건 (Burkina Faso v. Mali, 1986. 12. 22. 판결) 본문

33. Frontier Dispute (Burkina Faso/Mali) 사건 (Burkina Faso v. Mali, 1986. 12. 22. 판결)

국제분쟁 판례해설/국제사법재판소(ICJ) 판례 2019. 10. 16.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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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사건 개요 및 배경

 

     이 사건은 말리와 부르카나파소의 요청에 의해 ICJ 가 양국간 북동부 지역의 국경을 이전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경계선을 기준으로 획정한 사건이다. 말리와 부르키나 파소는 모두 19 세기말부터 프랑스의 식민지였다가 1960 년 독립하였다. 프랑스는 아프리카 식민지 전체를 관할하는 총독(프랑스령 서아프리카 총독)  아래 말리(당시 명칭은 French Sudan), 니제르 등 국가 단위에는 국별 총독을 파견하고 국가내에 도, 군을 두어 군 단위는 군 장교의 관할 하에 두었다.

 

     부르키나 파소(식민지 당시 명칭은 어퍼 볼타 upper volta)는 1919 년 주변 프랑스 식민지 국가의 수개 군 단위 행정 구역을 종합하여 신설된 후 1932 년 9 월 5 일 다시 해체되어 코트디브와르, 말리, 니제르에 군별로 분할 편입되었다가 1947 년 9 월 4 일 이전의 郡 경계를 기준으로 다시 회복되는 등의 부침이 있었다. 같은 프랑스 식민지 내의 관할 구역 변경이었고 광할한 사막 지대라 정밀한 경계 획정이 필요하지도 않아서 당시의 경계는 정확한 측량도가 아닌 서술과 스케치로 구분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다.  양국은 1960 년 독립 후 양국간의 정확한 경계를 획정하기 위해 국경 획정 위원회를 조직하여 대부분의 경계선은 확정하였으나 북동부 지역은 식민지 시대의 정확한 경계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다툼이 발생하였다. 

 

1974 년 12 월 양국간에 무력 충돌이 발생하여 1975 년 아프리카 단결 기구(Oraganization of African Unity)는 중재 위원회를 설치하여 양국의 이해 관계를 조정코자 하였다. 미정 상태의 국경 획정도 의제 중의 하나였다. 중재 위원회는 국경 획정을 위해 산하에 기술 소위원회를 설치하여 세부 사항을 협의토록 하였으나 식민지 당시의 경계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없어 중재 위원회의 국경 획정 사업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양국은 이 문제를 ICJ 에 회부하기로 하고 1983 년 9 월 16 일 구체적인 청구 내용을 정리한 특별 약정을 체결하였다. 양국은 특별 약정 서문에서 식민지 시대 국경 불변경 원칙(uti possidetis juris 129)하에 양국 국경을 획정하겠다는 점을 밝히고 분쟁 지역에서의 양국간 국경을 획정하여 줄 것을 ICJ 에 청구하기로 하였다. 양국은 특별 약정에 의거하여 1983 년 10 월 14 일 ICJ 에 재판을 청구하였다. 신속하고 전문적인 심리 진행을 위해 소재판부를 구성하여 심리하여 줄 것도 청구하였다.

 

나. 주요 쟁점 및 판결

 

1) 식민지 시대 경계 확인의 어려움 

 

    양국이 ICJ 에 요청한 것은 분쟁 지대 국경선을 과거 식민지 시대 경계대로 획정하여 달라는 것이었다. 식민지 시대의 경계를 확인하면 될 일이었으나 문제는 당시의 경계가 어떠하였는지 정확한 자료가 없는 것이었다. 양측이 제시한 각종 자료는 문제가 되는 경계를 문장으로 서술하였거나 손으로 작성한 도면인 경우가 많았으며 일부는 제법 정확한 지도에 국경이 표시된 것도 있었으나 지도의 공신력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또 다른 문제는 식민지 시대의 자료에서 확인되는 사항, 예를 들어 부락명, 지명 등이 현재의 명칭과 다른 경우가 적지 않아 식민지 시대의 국경을 현재의 정확한 위치로 작도하기가 곤란하였다.


식민지 시대의 경계를 확인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재판부는 1919 년 3 월 1 일 어퍼 볼타 설치령, 1922 년 12 월 31 일 말리 지방 행정 구역 변경을 위한 프랑스 서아프리카 총독령, 1927 년 8 월 31 일 니제르와 어퍼 볼타 경계 획정 총독령, 1932 년 9 월 5 일 어퍼 볼타 철폐령, 1935 년 서아프리카 총독과 니제르, 수단 지역 총독간의 경계 획정 관련 서한, 1935 년 11 월 27 일 말리내 특정 郡 설치를 위한 총독령 등을 검토하였으나 각종 경계가 측량이 아니라 서술로 되어 있어 이를 현대의 정밀한 지도 위에서 확인하기가 난감하였다. 예를 들어 1922 년 12 월 총독령에 서술된 내용을 예를 들자면 Gao 郡의 경계는 서쪽으로는 니제르의 Saleah(지명)에서 시작되어 En Amaka, Tinamassorori(모두 지명)를 지나 Oussodia Mersi 호수를 지나 어퍼 볼타의 북쪽 경계에 이르는 선으로 한다는 식이었다. 


해당 지명의 범위가 넓어 정확히 어느 지점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고 현재에는 그 지명이 바뀌어 어디를 의미하는지가 불분명한 경우도 있었다. 일부 자료는 지도가 첨부되어 있기도 하였는데 정밀 지도가 아니라 손으로 작도한 약도로서 문장으로 서술한 내용을 도해한 수준이었다. 양국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용의 상당히 정확한 지도를 제출하기도 하였으나 정확한 출처나 총독령 등 정확한 근거 문건을 확인하기가 곤란하여 재판부는 특별한 공신력을 부여할 수 없었다.

 

2) 국경 획정

 

    결국 재판부의 주요 작업은 위의 자료를 포함하여 분쟁 지역이 속했던 구 프랑스 식민지 당시의 군 경계에 관한 각종 자료를 교차 비교하고 해석하여 경계 방식과 그 형태를 이해하고 현대의 지도 위에 가능한 근접하게 식민지의 경계선을 작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자료의 부족과 상호 모순, 불명료한 표현으로 인해 과거 경계선을 선형의 형상으로 현대 지도 위에 복원하기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또한 정확한 경계선 획정을 위해 식민지 경계선과 유사한 선형이 일련의 직선의 조합으로 재현될 수 있도록 13 개의 좌표를 제시하였다. 13 개의 좌표를 이은 선이 재판부가 획정한 양국의 국경선이다. 13 개 좌표선은 자료를 통해 유추한 과거 식민지 경계선의 형상과 유사하나 13 개 좌표 자체는 재판부가 임의로 선정하여 제시하였다.

 

(작성자 : 김승호 신통상질서전략실장)

 


1) 새로 성립되는 국가는 독립 이전 행정 구역 또는 관할 지역의 경계를 국경으로 한다는 원칙, 주로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의 식민지가 독립할 때 적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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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글은 산업통상자원부 김승호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이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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