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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time Delimitation and Territorial Questions 사건(Qatar v. Bahrain, 2001. 3. 16. 판결) 본문

Maritime Delimitation and Territorial Questions 사건(Qatar v. Bahrain, 2001. 3. 16. 판결)

국제분쟁 판례해설/국제사법재판소(ICJ) 판례 2019. 10. 16.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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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사건 개요 및 배경

 

     이 사건은 바레인과 카타르 간의 해양 경계와 섬 등 특정 지역의 영유권을 당사국의 요청으로 ICJ 가 결정한 해양 경계 획정 및 영유권 분쟁 사건이다. 영국은 인도와의 무역 항로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17 세기 후반부터 페르시아만에 진출하기 시작하여 1820 년 아랍 부족장(Sheikh)들의 해적 행위를 금지하는 대신 영국이 안전을 제공하는 내용의 다양한 합의를 체결하기 시작하였다. 19 세기말에는 바레인,  아부다비, 샤르자, 두바이 지역의 부족장들과 보다 진전된 형태의 약정을 체결하여 부족장들의 통치권을 인정하고 보전하여 주는 대가로 방위 및 대외 관계를 영국이 통제하고 부족장들이 아랍 지역은 물론 서구 국가와 국가 대 국가의 관계를 맺지 못하도록 하였다.

 

당시 바레인을 장악하고 있던 Al Khalifah 부족은 원래 카타르 북부의 Zubarah 지역에서 이주해 왔으며 카타르는 Al Khalifah 부족이 바레인으로 이주한 이후 Al Thani 족이 지배 부족으로 점령하고 있었다. 1868 년 영국 총독은 두 부족장과 상호 평화를 유지하고 분쟁 사항을 영국 총독에게 재결을 의뢰한다는 약정을 각각 체결하였다.  카타르는 이는 영국이 Al Thani 를 바레인과 대등한 독립적인 부족령으로 인정한 것이라고 보았고 카타르는 1916 년 영국의 동의 없이 어느 국가와도 관계를 맺거나 연락하거나 대표를 접수하지 않는다는 약정을 영국의 보호 강화를 조건으로 체결하였다. 

 

1 차 세계대전 후 아라비아 반도에서 유전이 발견되자 바레인과 카타르는 양국간의 섬, 모래톱, 해저의 영유권 및 경계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바레인은 영국인 자문관의 조언에 따라 바레인 주변 해역의 섬, 암초, 모래톱 등에 신호등을 세우고 카타르에 인접한 Hawar 섬(諸島)에 예배당 등 시설물을 건설하였다. 바레인과 유전 개발 양허 계약을 협의하고 있던 영국 회사는 Hawar 섬이 자국령이라는 바레인의 주장의 진위 여부를 영국 총독에게 문의하였으며 총독은 사실이라고 확인하여 주었다.  이 사실은 바레인에게는 통지가 되었으나 카타르는 통지받지 못했다. Hawar 섬 문제는 다시 영국 총독에게 제기되었고 바레인은 Hawar 섬에 거주하는 Dowasir 부족이 자신들과 정치적 유대 관계에 있으며 그들의 어선이 바레인 당국에 등기되어 있고 Hawar 섬 석고 채굴 허가가 바레인 당국에 의해 발행되는 등의 바레인이 오래 전부터 시정 활동을 해왔다고 주장하였다.

 

카타르는 Howard 섬이 자국 본토와 인접해 있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증거를 제출하지 못하였다. 영국 총독은 Howard 섬이 바레인령이라고 판단하였고 영국 정부의 승인을 받은 후 이 결정을 1938 년 7 월 바레인과 카타르 부족장에게 통보하였으며 카타르의 항의와 이에 대한 바레인의 입장을 심리하여 1939 년 Hawar 섬은 바레인령이라고 다시 결정하였다(이하 1939 년 결정). 카타르는 이에 항의하였으나 곧 2 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더 이상 논의되지는 못하였다.

 

1946 년 영국 석유 회사가 카타르령에 속하는 것으로 보이는 대륙붕 지역에서의 시추 허가를 청구하자 영국은 허가를 잠시 보류하고 양국간 해양 경계 문제를 정리하기로 하였다. 영국은 기존 자료와 양국 입장을 청취한 후 1947 년 12 월 양국 해양 경계를 본토 간의 대략적인 등거리선을 기준으로 획정하였다(이하 1947 년 결정). 그런데 통상적인 해양 경계 획정 기준인 간조시 기준점 대신 만조시 기준점을 채택하였다. 양국 해역은 수심이 얕아 간조시에만 노출되는 모래톱이 많았다. 영국은 양국간 다툼이 있던 Qitat Jaradeh 와 Fasht ad Dibal 모래톱은 자체적인 영해 등 해양 수역을 가질 수 있는 섬이 아니라 간조 노출지(Low Tide Elevation)이라고 판단, 이들을 무시하고 양국간의 영해와 해양 경계를 획정하였으며 이들 간출지는 바레인 소유라고 결정하였다. Hawar  제도의 남부의 Jennan 섬만 카타르령이라고 결정하고 나머지 섬은 모두 1939 년 결정대로 바레인령이라고 판정하였다. 1947 년 결정에 대해 바레인과 카타르는 모두 불만이었다. 바레인은 Jennan 섬이 자국령이며 간출지로 판정된 Qitat Jaradeh 와 Fasht ad Dibal 모래톱은 모두 별도의 영해와 해양 수역을 가질 수 있는 정식의 섬이라고 주장하였다.

 

바레인은 1947 년 결정이 판정하지 않은 카타르 본토의 Zubarah 지역에 자국민이 목축 활동을 계속하도록 방조하였다. 1971 년 바레인과 카타르가 영국의 보호령에서 정식으로 독립하게 되자 섬들에 대한 영유권 및 해양 경계 획정은 양국이 직접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되었다.  양국의 대립이 지속되자 사우디 아라비아는 양국을 조정하려고 수 차례 시도하여 3 개국간 위원회를 구성하기도 하였으나 해결에 이르지 못하였다.

 

결국 1987 년 12 월 카타르와 바레인은 외교 공한 교환을 통해 관련된 모든 분쟁을 ICJ 에 회부하기로 합의하였고 ICJ 의 규정과 절차에 따라 분쟁 회부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사우디, 바레인, 카타르 3 국간 협의회를 개최하기로 하였으며 사우디는 양국간 분쟁을 조정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기로 합의하였다(이하 1987 년 합의). 3 국간 협의회는 ICJ 에 이 사건 분쟁을 회부하기 위한 특별 약정을 협의하였으나 당사국간 이견이 있어 합의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바레인은 ICJ 에 판결을 의뢰할 구체적인 분쟁 사안을 정리하였고 카타르는 이를 수용하였다(이하 바레인 방식171).

 

1990 년 12 월 25 일 카타르와 바레인 외교 장관은 1991 년 5 월까지 사우디의 조정을 계속하되 그 이후에는 당사국은 이 문제를 바레인 방식에 의거하여 ICJ 에 회부할 수 있다는 내용의 합의 의사록에 서명하였다(이하 1990 년 의사록). 사우디의 조정이 기한 내에 이루어지지 않자 카타르는 1987 년 합의와 1990 년 의사록에 근거하여 1991 년 7 월 8 일 이 사건 판결을 ICJ 에 청구하였다. 청구 내용은 Hawar 섬(Jennan 섬 포함), Fasht ad Dibal 모래톱, Qitat  Jaradah 모래톱의 영유권이 자국에게 있으며 해저, 해저 지하, 해역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단일의 경계선을 획정하여 달라는 것이었다.

 

 

나. 주요 쟁점 및 판결

 

1) 1차 관할권 항변

 

     바레인은 1990 년 의사록은 외교 장관간의 협의 내용을 기록한 것일 뿐 구속력을 갖는 문건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따라서 이 문서는 ICJ 의 관할권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항변하였다. 아울러 1990 년 의사록 문안상 당사국 모두의 명의로 ICJ 에 회부할 수 있다는 것이므로 카타르가 일방적으로 재판을 청구할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하였다. 재판부는 1990 년 의사록은 1987 년 합의 재확인, 사우디 조정 시한 설정, 바레인 방식 수용 등의 권리 및 의무 사항을 규정하고 있어 바레인의 주장처럼 단순한 회의 기록이라고 볼 수는 없고 국제법상의 권리와 의무 관계를 창설한 국제적인 합의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바레인은 외교 장관이 의사록 서명시 법적으로 구속력이 있는 문건이라는 인식이 없었으며 영토에 관한 조약은 국내법의 형태로 입법되어야 한다는 바레인 헌법상의 규정과도 합치되지 않는다고 항변하였다. 재판부는 바레인 외교 장관의 의사나 헌법상의 절차 규정을 심리해야 할 필요성은 없으며 의사록에 서명한만큼 바레인 외교 장관은 국제적인 합의가 아니라 단순한 정치적인 양해를 기록한 문서에 서명하였을 뿐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처지에 있지 않다고 일축하였다.

 

바레인은 자신은 물론 카타르도 1990 년 의사록을 UN 및 아랍연맹 사무국에 조약으로 등록하지 않은 점을 들어 당사국도 이를 국제법상의 조약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하였으나 재판부는 UN 헌장 102 조 규정상 UN 사무국에 등록되지 않은 조약은 UN 에서 조약으로 원용하지 못한다는 것일 뿐 당사국간 합의는 당사국을 구속한다고 확인하고 1990 년 의사록은 1987 년 합의와 마찬가지로 당사국간 권리 의무를 창설하는 국제적 합의에 해당한다고 결론내렸다(1 차 관할권 판결문 para. 24~30).

 

재판부는 1987 년 합의와 1990 년 의사록이 창설한 구체적인 권리 의무 내용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1987 년 합의는 문안상 (영유권, 해양 경계 획정 등에 관련된) 모든 분쟁 사안(disputed matters)을 ICJ 에 회부하기로 약속하였고 이 약속에 따라 ICJ 가 재판을 수행하게 될 방식을 사우디도 참여하는 3 국 위원회를 구성하여 결정한다는 것이었다. 3 국 위원회는 ICJ 에 판결 의뢰할 분쟁 사안의 범위를 결정하지 못했고 바레인이 제안한 방식대로 ICJ 에 회부한다는 것이 1990 년 합의의 골자였다. 재판부는 바레인의 청구 사항은 1987 년 합의 및 1990 년 의사록과 달리 양국간 모든 분쟁 사안이 아니라 일부에 국한된 점을 지적하고 1990 년 의사록과 바레인 방식에 기재된 바와 같이 당사국은 이 사건과 관련된 모든 분쟁 사안을 ICJ 에 회부해야 한다고 보았다(para. 36~38).


이상의 심리를 토대로 재판부는 1987 년 합의 및 1990 년 의사록은 권리 의무를 창설하는 국제적 합의이며, 이에 따라 당사국은 바레인 방식에 기재된 모든 분쟁을 청구해야 하므로, 모든 분쟁에 대해 재판을 청구할 기회를 당사국에 부여하기로 결정하고, 1994 년 11 월 30 일 이내에 당사국은 이를 위한 조치를 취하라고 판결하였다(para. 41).

 

 

2) 2차 관할권 항변

 

     카타르는 1 차 관할권 판결에 따라 1994 년 11 월 30 일 바레인 방식에 기재된 모든 분쟁 사안에 대해 판결하여 줄 것을 요청하는 청구서를 다시 제출하였다. 바레인은 1 차 사건 재판부가 국제적 합의라고 확인한 1990 년 의사록172은 당사국이 공동으로 바레인 방식에 따라 ICJ 에 재판을 청구하도록 규정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카타르가 이를 위반하여 단독으로 재판을 청구하였으므로 재판부는 이 사건에 관해 관할권이 없거나 카타르의 재판 청구를 수리할 수 없다고 항변하였다.

 

1990 년 의사록은 아랍어로 기술되어 있었다. 당사국은 바레인 방식에 의거하여 이 문제를 ICJ 에 회부할 수 있다는 두 번째 문장의 주어가 아랍어로 al-tarafan 이라고 기재되어 있었는데 바레인은 이를 the two parties 라고 번역하였고 카타르는 the parties 라고 번역하였다. 바레인의 주장은 두 당사국이 공동으로 ICJ 에 회부해야 한다는 것이 두 번째 문장의 의미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두 당사국 모두 어느 번역을 택하든 단독, 또는 공동 제소에 대한 해답을 주는는 것은 아니며 문제는 두 가지 번역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문맥상의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는 견해를 표명하였다. 복수로 사용된 이 단어가 선택적 의미, 즉 두 당사국 중 하나가 일방적으로 제소할 수 있다는 것인지 아니면 집합적 의미, 즉 단독 또는 공동 제소하든 두 당사국의 의견 일치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인지를 문맥과 상황을 통해 결정해야 한다고 보았다. 

 

카타르는 선택적 의미라고 이해한 반면 바레인은 카타르가 바레인의 동의 없이는 단독으로 제소할 수 없다는 집합적 의미라는 입장을 개진하였다. 재판부는 당사국(the parties, the two parties)이 제소할 수(may) 있다는 문장은 may 의 통상적인 의미상 가능성 또는 권리를 나타내며 이 문장은 따라서 재판부로 하여금 이 사건을 담당하게 하는 선택이나 권리를 시사한다고 보았다. 이 문장의 통상적인 의미는 두 당사국 모두의 합의에 의한 재판 청구를 요구하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일방적인 재판 청구를 허락하고 있다고 해석하였다. 재판부는 이 문장의 앞에는 사우디의 조정 기한이 경과할 경우라는 구문이 있으므로 전체 문장의 구성과 내포된 논리상으로도 위와 같은 해석이 타당하다고 판단하였다.

 

전제 구문은 시한이 경과함과 동시에 재판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선택 또는 권리를 함축하고 있으며 이는 결국 일방적인 재판 회부라는 선택 또는 권리의 존재를 시사하는 것이고 이를 달리 해석하는 것은 전제 구문의 효과를 박탈하고 비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라고 재판부는 지적하였다. 아울러 재판부는 1990 년 의사록의 대상과 목적은 ICJ 에 회부하게 함으로써 분쟁 해결을 촉진하려는 것이므로 당사국이 합의하지 못한 공동 제소를 다시 요구한다고 해석할 수 없으며 사우디 중재가 기한 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일방 당사국이 단독으로 제소하게 하여 분쟁을 신속히 해결한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2 차 관할권 판결문 para. 34~35).


1990 년 의사록은 1991 년 5 월까지 사우디가 주관하는 조정을 시도하고 ICJ 재판 중에도 조정 절차는 병행하여 진행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1991 년 5 월부터 ICJ 재판 청구시까지의 기간 중에 조정 절차를 진행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재판부는 조정 절차를 진행할 수 없다고 가정하고 당사국간 합의를 통해서만 재판 청구를 할 수 있다고 해석한다면 일방 당사국이 합의에 응하지 않으면 재판 청구도,  조정 절차 진행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일방적인 재판 청구 권리는 조정 절차 중단에 대한 보완으로서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para.  36).

 

ICJ 에 제소하기 위해서는 당사국간 합의가 필요하다. 합의를 확정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재판 회부, 판결 요구 내용 등에 관해 당사국이 체결하는 특별 약정이다.  바레인과 카타르는 이 사건 회부를 위해 3 국 위원회를 구성하여 특별 약정에 대해 논의하였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고 바레인이 제안한 분쟁 대상 목록인 바레인 방식을 카타르가 수용하였다. 1990 년 의사록에는 바레인 방식과 그에 결부된 절차에 의거하여 ICJ 에 재판을 청구한다는 문안이 있었다.

 

바레인은 바레인 방식은 특별 약정을 협의하기 위한 3 국 위원회 논의 과정 중에서 제기된 것이고 당사국이 재판부에 결정하여 줄 것을 청구한다는 문구를 포함하고 있다고 환기하면서 이는 재판부에 당사국이 공동으로 제소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하였다. 특히 ‘그에 결부된 절차에 의거한다’는 표현은 당사국이 반드시 공동으로 재판을 청구한다는 의미라고 주장하였다. 재판부는 비록 바레인 방식이 특별 약정을 협의하기 위한 3 국 위원회 논의 과정 중에 제기된 것이라 할지라도 1990 년 의사록에 언급된 의미는 동 의사록의 문맥에서 파악해야지 최초에 제안된 상황의 견지에서 고려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1990 년 의사록이 바레인 방식을 언급한 것은 재판부가 재결해야 할 분쟁의 대상을 결정하기 위한 것이며 ‘그와 결부된 절차’에서의 그것이란 문법적으로 바레인 방식을 의미하고 바레인 방식이 특별 약정이 아닌 이상 시사하는 유일한 절차란 각 당사국이 ICJ 에 시비를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para. 37~39).

 

재판부는 이상의 심리를 토대로 카타르의 재판 청구를 수리할 수 있으며 이 사건을 재결할 수 있는 관할권이 있다고 판시하였다.

 

 

3) Zubarah 지역 영유권

 

     Zubarah 지역은 카타르 반도 북서부 일대 지역이다. 바레인은 Al Khalifah 부족이 18 세기 중엽 카타르 반도에서 바레인으로 이동한 이후에도 이 지역에 거주하는 Naim  부족과의 정치적 연대 관계를 통해 이 지역에 대한 주권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재판부는 그러나 1868 년 바레인과 영국이 체결한 조약에 주목하였다.  1867 년 바레인과 카타르 사이에 무력 충돌이 발발하자 영국은 휴전을 중재하고 영국이 바레인을 외부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되 바레인은 영국의 동의 없이 영토를 처분하거나 외국과 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보호 조약을 1868 년 체결하였다.

 

바레인은 또한 Al Thani  가문을 카타르 전체의 반독립적인 지배자로 인정하였다. 재판부는 이 조약 체결 이후 바레인 지배 부족은 Zubarah 지역에 직접적인 권한을 행사할 위치에 있지 않았고 Naim  부족이 Al Thani 가문과도 정치적 유대 관계를 맺었다는 증거도 인정하였다. 재판부는 1868 년 이후 Al Thani 가문이 Zubarah 지역을 포함하여 카타르 전역에서 지배권을 확보하였으며 이는 1913 년 영국과 오토만 제국이 체결한 협정에 Al Thani 가 카타르 반도를 통치하고 있다고 언급한 사실에서도 확인이 된다고 보았다. 재판부는 1937 년 Zubarah 지역에 대한 카타르의 과세권 발동을 둘러싼 바레인과의 분쟁에 영국이 개입하지 않은 것도 감안하여 Zubarah 의 영유권은 카타르에 속한다고 판정하였다(본안 판결문 para. 70~97).

 

4) Hawar 제도

 

     Hawar 제도는 카타르에 매우 인접해 있는 여러 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간조시에는 걸어서 갈 수 있을 정도였다. 카타르는 자국 본토와의 인접성을 근거로 이 사건 제소 이전부터 Hawar 제도가 자국령이라는 주장을 제기하였으나 바레인과 달리 실질적으로 지배, 관리하였다는 근거는 1938 년과 1947 년 영국 주도의 심리 과정에서도 제시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ICJ 재판부 심리가 개시되자 카타르는 무려 81 종에 달하는 문건을 증거로 제출하면서 1939 년 영국의 결정 훨씬 이전부터 Howard 섬과 Zubarah 지역이 카타르 Al Thani 부족과 그 영향 아래 있는 부족의 관할 하에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카타르가 제출한 문건은 Al Thani 부족의 지배권을 인정하는 지역 부족장, 영국, 오토만 제국 관리들의 서한이나 이들이 발행한 문서 등이었다. 바레인은 이 문서가 이전에 일체 제시된 바 없고 그 출처가 불분명하며 터어키(오토만) 문서에 영국 국장이 날인되어 있는 등 그 진위가 의심스럽다고 주장하였다. 서한 서명일 전에 서한 서명자가 이미 사망하였거나 해당 직위에 있지 않는 등 역사적 사실과 시기와 어긋나는 점이 많았으며 오토만 관리간의 서한이 아랍어로 작성되어 있고 영국 문장이 날인되어 있기도 하였다.

 

잉크와 용지 조사 결과 당시에 제작된 것이 아니었으며 해당 문건이 정작 작성 당사국에서는 발견이 되지 않는데 모두 카타르 정부 문서 보관소에서 보관하고 있었다는 점도 의심의 여지가 충분하였다. 바레인의 요구에 따라 카타르는 일부 문서 원본을 제공하였는데 문서 용지가 현대의 재생지로 밝혀지기도 하였고 별도의 기관에서 수년 간의 격차를 두고 발행한 문서의 절단면이 일치하는 등 위조의 증거가 명백하였다. 결국 재판부는 1998 년 9 월 30 일까지 해당 문건의 신빙성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카타르에 지시하였으나 카타르는 명백한 해명을 하지 못하였다. 1998 년 12 월 15 일 카타르는 81 종의 문건을 모두 철회하였다. 그러나 카타르는 Hawar 섬이 자국령이라는 주장은 계속 견지하였다. 지리적 인접성 외에 1939 년 영국 결정이 명백한 사실 관계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으며 당시 영국 총독이 바레인 Al Khalifah 부족장의 영국인 자문관과 유착 관계에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카타르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 중의 하나로 영국의 보호령이었던 두바이와 Sharjah 부족령간의 영토 분쟁에 대한 영국의 중재 결과를 제기하였다. 1957 년 두바이와 샤르자 부족장의 요청에 따라 영국은 정밀 측량을 실시한 후 경계를 판정하였으나 두바이는 수용을 거부하고 독립 후 1981 년 이를 정식의 국제 중재에 회부하였다. 중재 판정부는 영국의 경계 결정은 법적인 구속력이 있는 중재 판정이 아니라 일종의 행정 명령으로서 당사자가 수용을 거부할 경우 다시 결정할 수 있다고 판정하였다. 카타르는 이 중재 판정을 원용하여 1939 년 영국의 결정은 번복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카타르가 이 결정에 동의한 바도 없고 바레인에 편향된 결정이며 자신은 자신의 주장을 정당하고 공평하게 제기할 기회도 부여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판정의 이유가 명시되지 않은 점도 시비하였다. 재판부는 카타르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다. 1938 년 영국 결정이 Dubai 와 Sharjah  결정처럼 중재 판정이 아니라는 점은 재판부도 인정하였으나 카타르도 영국이 바레인과의 경계를 획정하는 것에 동의하였고 그 과정에 영국 당국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등 관련 절차에 참가하였다고 보았다. 재판부가 확인한 사실 관계는 이러하다. 

 

  • 1938 년 5 월 10 일 카타르가 영국 총독에게 Hawar 섬 영유권을 주장하는 서한을 발송하자 영국 총독은 같은 해 5 월 20 일 영유권 주장을 관련 증거와 함께 정식으로 청구하라고 회신하였고 이 사실을 1938 년 7 월 21 일 바레인에게도 통지하였다. 
  • 1939 년 4 월 22 일 영국 총독은 카타르 부족장은 지리적 인접성 외에는 자신의 영유권 주장을 입증할 증거를 제출하지 못한 반면 바레인은 Hawar 섬의 Dawasir  부족이 바레인의 허가를 받고 거주하게 된 사실, 바레인 관리가 Hawar 섬을 주기적으로 방문하고 민사 분쟁을 재결한 사실, Dawasir 부족의 어선이 바레인에 등록되어 있고 석고 채굴 허가를 발행한 사실, 바레인이 경찰서와 회교 사원을 건설한 사실, Dawasir 부족이 150 년 이상 연중 거주한 사실 등에 관한 자료를 제출한 점에 비추어 Hawar 섬은 바레인령으로 판단된다는 요지의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 1939 년 7 월 1 일 영국 외무성은 Hawar 섬은 바레인령이라고 결정하였으며 이 결정은 7 월 11 일 카타르와 바레인측에 통지되었다. 
  • 통지문에는 판정 결과만 기재되었고 판정의 이유는 언급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위와 같은 사실 관계를 토대로 카타르와 바레인은 영국의 Hawar 섬 영유권 결정에 동의하였으며 1939 년 영국 결정이 중재 판정은 아니나 당사국이 동의한만큼 이 문제를 결정할 수 있는 정당한 관할권을 포지하고 있고 당사국을 구속한다고 판단하였다. 

 

카타르의 편향성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양측에게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기회와 시간을 부여한 것이 확인되므로 편향되었거나 정당한 기회가 제공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판정의 이유가 설명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양국이 영국에게 판정을 의뢰할 때 판정의 이유를 명시할 의무를 부과하지 않았으므로 판정 이유 불설명을 근거로 판정의 유효성을 배척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상의 심리를 토대로 재판부는 1939 년 결정은 카타르와 바레인을 구속하며 Howard 섬의 영유권은 바레인에 있다고
확인하였다(para. 110~148).


1939 년 결정은 Hawar 제도가 바레인령이라고 판정하였으나 이 제도를 구성하는 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1947 년 결정은 Jennan 섬은 Hawar 제도 구성 도서가 아니며 카타르 령이라고 판정하였다. Jennan 섬과 Hawar 제도 사이의 해역이 카타르에 이르는 주요한 해로라는 점을 감안한 판정이었다. 재판부는 1947 년 결정은 1939 년 결정을 공식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밝히고 Jennan 섬은 카타르령이라고 확인하였다. 이 사실 외에 자신의 판정 근거에 대해 별도의 설명을 첨가하지는 않았다(para. 164).

 

5) 해양 경계

 

     1939 년 결정의 구속성을 인정한 것과는 달리 재판부는 1947 년 영국의 해양 경계 결정의 효력은 인정하지 않았다. 두 당사국이 모두 반대하고 있었고 당사국의 동의를 획득한 것도 아니며 입장을 반영하지도 않은 점, 당시에 알려진 사실에 근거한 것이므로 새로운 정보가 입수되거나 사실 관계가 변할 경우 개정될 수 있다고 1947 년 결정 자체에 명기되어 있는 점, 당시 경계는 대륙붕 경계일 뿐이나 이 사건 당사국이 획정하여 줄 것을 요청하는 경계는 영해, 배타적 경제 수역까지를 포함한 단일 경계선이라는 점을 그 근거로 제시하였다.

 

재판부는 두 당사국 모두 1958 년 해양법에 관련된 일련의 제네바 협정173에 서명하지 않았고 1982 년 UN 해양법 협약은 카타르만 서명하였으나 아직 비준하지 않았으므로 이러한 성문 법전을 직접 이 사건에 적용할 수는 없고 국제 관습법에 따라 양국간 경계를 획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두 당사국 모두 국제 관습법이 1982 년 해양법 협약에 반영되어 있다는 점은 인정하였으므로 큰 차이는 없게 되었다.


재판부는 양국이 마주 보는 해역의 폭은 24 해리 이내로서 영해 경계선만 설정하면 충분하다고 보았다. 이 경우 적용될 국제 관습법상의 규범은 등거리선을 적용하지 못할 특수한 사정이 없는 한 등거리선을 적용하는 것이었다. 양국 모두 영해 기선을 설정하지도 않았고 영해 기준점 설정의 근거가 되는 공식적인 해도도 발행하지 않은 상태였다. 카타르는 본토간의 등거리선을 주장하였고 바레인은 자신이 군도 국가이므로 1982 년 해양법 협약에서 인정하고 있는 군도의 외곽 도서를 연결하는 직선을 기준으로 영해를 획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재판부는 직선 기준을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바레인이 군도 국가인지 여부와 바레인의 해안선이 굴곡이 심하거나 다수의 섬이 존재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하고 직선 기준론을 수용하지 않았다.

 

등거리선은 간조시의 지형과 기타 해안 상황을 고려하여 설정해야 한다는 이유로 카타르의 본토 기준 등거리선 주장도 접수하지 않았다. 양국이 마주보는 해역에서의 경계 획정시 쟁점이 된 것은 Qitat Jaradah 와 Fasht ad  Dibal 모래톱이었다. 1947 년 결정시 영국은 이 모래톱이 모두 섬은 아니고 간출지에 해당하며 바레인에 속한다고 보았다. 두 모래톱 모두 바레인과 카타르의 영해 범위 내에 위치하고 있었다. 재판부는 Qitat Jaradah 는 극소 규모(12m×4m)이기는 하지만 만조시에도 수면 위에 항시 노출되어 있으므로 1958 년 영해 및 접속수역에 관한 협정 10(1)조, 1982 년 UN 해양법 협약 121(1)조 174상의 정의에 부합하는 섬이라고 판정하였다. 

 

재판부는 바레인이 신호등 등 항해 설비를 설치하고 운영하여 온 점을 인정하여 Qitat Jaradah 는 바레인령이라고 판정하였다. Qitat Jaradah 가 섬이라면 자신의 영해와 별도의 대륙붕, 경제 수역을 갖도록 해양 경계를 설정해야 할 것이다. 재판부는 그러나 이 경우 극미한 섬의 크기에 비해 비례에 맞지 않는 극심한 결과(방대한 해역 소유 및 카타르의 해역 축소)가 우려된다고 언급하고 해양 경계선은 Qitat Jaradah 의 지근 해역을 통과하도록 획정하였다. Fasht ad Dibal 에 대해서는 1947 년 결정과 마찬가지로 간출지라고 재판부는 판정하였으나 그 소유국은 바레인이 아니라 카타르라고 보았다.

 

위의 1958 년 협정 11(1)조, UN 해양법 협약 13(1)조175에 따르면 간출지는 연안국의 영해 폭 범위 내에 있을 경우에는 영해 기준점이 될 수 있으나 폭 외에 위치할 경우에는 아무런 영해도 주장할 수 없었다. 간출지에 수면 위로 상시 노출되는 고정 시설물이 설치되어 있지 않는 한 직선 기선의 기준점이 될 수도 없었다. 바레인은 자신이 신호등을 설치한 점을 근거로 Fasht ad Dibal 이 자국령이며 직선 기준점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으나 재판부는 수용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시설물 설치에 따라 직선 기준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은 해당 간출지가 타국의 영해 내에 존재하지 않을 경우에나 적용할 수 있는 것이며 Fasht ad  Dibal 은 공히 바레인과 카타르의 영해 내에 위치하여 있어 바레인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고 보았다. 간출지가 섬과는 법적 지위가 다른 점은 1958 년, 1982 년 협정이 섬과 다른 정의를 부여한 점에서 볼 때 명백하고 국제 관습법이나 지금까지의 국제 관행상 간출지를 영토처럼 일방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고 허락하는 규범도, 금지하는 규범도 모두 없다고 설명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연안국이 간출지를 자신의 소유로 취급하고 정부 기능을 행사했는지의 여부는 큰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재판부는 양국 영해 범위 내에 있는 간출지는 결국 해저의 일부로 보아야 하며 Fasht ad Dibal 은 위치상 카타르에 더 근접하므로 카타르의 영유권 아래 있다고 판정하였다(para. 195~210). 바레인과 카타르 간 해역에는 Fasht al Azm 이라는 대규모의 간출지가 있었다.  재판부는 양국간 등거리선 적용을 유보할 수 있는 특수한 사정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Fasht al Azm 를 바레인의 Sitrah 섬에 연결된 간출지로 볼 경우 해양 경계가 지나치게 카타르쪽으로 이동하게 되고 Sitrah 섬과 절연된 독립적인 간출지로 볼 경우 간조시에는 해양 경계가 이 간출지를 통과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1982 년에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준설하여 지형상으로는 Fasht al Azm 과 분리되는 Qitat ash Shajarah 가 Fasht a Azm 남부에 위치하고 있었다. 재판부는 양국간 해양 경계선은 이 두 모래톱 사이를 통과하도록 설정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판단하였다. 바레인과 카타르가 마주 보지 않는 북부 해역의 경계는 결국 대륙붕/배타적 경제 수역의 경계 설정 문제였다.

 

재판부는 이전의 판례가 일단 잠정적으로 등거리선을 설정한 후 특수한 사정의 존부와 정도를 반영하여 등거리선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해양 경계를 설정하여 왔다고 환기하고 이 사건에도 이 방식을 적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카타르는 영국의 1947 년 결정이 특수한 사정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으나 재판부는 기각하였으며 진주 양식장이 본토에서 상당한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점을 특수한 사정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바레인 주장도 기각하였다. 바레인은 자신의 해안선이 카타르보다 길다는 점도 특수한 사정으로 제기하였으나 재판부는 이미 Hawar 섬을 바레인령으로 인정하였으므로 해안선 길이까지 고려하는 것은 바레인에게 지나치게 우호적이라고 보고 역시 기각하였다.

 

재판부는 북부 해역에서 양국의 해안선은 마주보는 대안국이 아니라 인접국의 형태와 유사하다고 보고 특수한 사정이 없는 한 국제 관습법 및 관행에 따라 등거리선으로 경계를 획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하였다. 바레인 북부 해역에는 Fasht al Jarim 이라는 방대한 간출지가 있었다. 재판부는 이 간출지가 바레인에서 상당히 이격되어 있고 만조시 노출 면적이 극미하여 해양 경계 획정시 반영할 경우 경계가 비례에 맞지 않게 왜곡된다는 점을 근거로 이 간출지의 존재를 무시하고 등거리선을 측량하였다. 재판부는 여러 사정을 평가할 때 양국간 등거리선을 조정해야 할 특수한 사정이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고 결론짓고 양국간 북부 해역의 경계는 등거리선으로 획정하였다. 구체적으로 재판부는 총 42 개 지점의 좌표를 선정하였고 이를 연결하는 선으로 양국간 해양 경계를 획정하였다.

 

(작성자 : 김승호 신통상질서전략실장)

 

 


1) objective of defining exhaustively the matters which would be referred to the Court, which are:

1. The Hawar Islands, including the island of Janan

2. Fasht al Dibal and Qit'at Jaradah

3. The archipelagic baselines

4. Zubarah

5. The areas for fishing for pearls and for fishing for swimming fish and any other matters connected with maritime boundaries.

 

2) The following was agreed

(1) to reaffirm what was agreed previously between the two parties;

(2) to continue the good offices of the Custodian of the Two Holy Mosques, King Fahd Ben Abdul Aziz, between the two countries till May of the next year 1991. After the end of this period, the parties(카타르 번역),[the two parties(바레인 번역)] may submit the matter to the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in accordance with the Bahraini formula, … Saudi Arabia's good offices will continue during the submission of the matter to arbitration;

(3) should a brotherly solution acceptable to the two parties be reached, the case will be withdrawn from arbitration."

 

3) Convention on the Territorial Sea and the Contiguous Zone (CTS); the Convention on the High Seas (CHS); the Convention on Fishing and Conservation of the Living Resources of the High Seas (CFCLR); the Convention on the Continental Shelf (CCS)

 

4) 1. An island is a naturally formed area of land, surrounded by water, which is above water at high tide.

 

5) 1. A low-tide elevation is a naturally formed area of land which is surrounded by and above water at low tide but submerged at high tide. Where a low-tide elevation is situated wholly or partly at a distance not exceeding the breadth of the territorial sea from the mainland or an island, the low-water line on that elevation may be used as the baseline for measuring the breadth of the territorial sea

 

6) objective of defining exhaustively the matters which would be referred to the Court, which are:

1. The Hawar Islands, including the island of Janan

2. Fasht al Dibal and Qit'at Jaradah

3. The archipelagic baselines

4. Zubarah

5. The areas for fishing for pearls and for fishing for swimming fish and any other matters connected with maritime boundaries.

 

7) The following was agreed

(1) to reaffirm what was agreed previously between the two parties;

(2) to continue the good offices of the Custodian of the Two Holy Mosques, King Fahd Ben Abdul Aziz, between the two countries till May of the next year 1991. After the end of this period, the parties(카타르 번역),[the two parties(바레인 번역)] may submit the matter to the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in accordance with the Bahraini formula, … Saudi Arabia's good offices will continue during the submission of the matter to arbitration;

(3) should a brotherly solution acceptable to the two parties be reached, the case will be withdrawn from arbitration."

 

8) Convention on the Territorial Sea and the Contiguous Zone (CTS); the Convention on the High Seas (CHS); the Convention on Fishing and Conservation of the Living Resources of the High Seas (CFCLR); the Convention on the Continental Shelf (CCS)

 

9) 1. An island is a naturally formed area of land, surrounded by water, which is above water at high tide.

 

10) 1. A low-tide elevation is a naturally formed area of land which is surrounded by and above water at low tide but submerged at high tide. Where a low-tide elevation is situated wholly or partly at a distance not exceeding the breadth of the territorial sea from the mainland or an island, the low-water line on that elevation may be used as the baseline for measuring the breadth of the territorial 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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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글은 "국제법 판례 종합해설 1,2권"(저자 김승호)의 해당사건 부분을 저자의 동의하에 일부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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