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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rfu Channel 사건 (UK v. Albania, 1949. 4. 9. 판결) 본문

1. Corfu Channel 사건 (UK v. Albania, 1949. 4. 9. 판결)

국제분쟁 판례해설/국제사법재판소(ICJ) 판례 2019.10.16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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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사건 개요 및 배경

 

     이 사건은 영국 군함 2척이 코르푸 해협을 통항하던 중 정체 불명의 기뢰에 의해 피폭된 데 대해 연안국 알바니아의 국제법적 책임이 인정되나 영국이 알바니아 영해 내에서 일방적으로 기뢰 제거 작전을 시행한 것 역시 국제법 위반이라고 판시된 사건이다.

 

Corfu 해협은 알바니아 지중해 해안과 그리이스령 Corfu 섬 東岸 사이의 폭 3 km~20km 의 수로이다. 1946년 10월 22일 영국 해군 함대가 코르푸 해협을 통항하던 중 구축함Saumarez호와 Volage호가 기뢰에 충돌하여 대파되었다. 이 사고로 44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이 해협은 국제 항로였고 영국 해군이 1944년 10월 기뢰 소해 작업을 실시하여 안전 통항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나 그리이스와 긴장 관계에 있던 알바니아는 선박 통항을 엄중히 감시하고 있었다. 1946년 5월 15일 알바니아의 해안 포대는 이 해협을 통항하던 영국 군함에 대해 경고 사격을 하였다. 영국은 무해 통항권을 침해당했다고 주장하였고 알바니아는 해협 통항 선박은 사전에 알바니아의 허락을 득해야 한다고 맞섰다. 1946년 기뢰에 피폭된 영국 함대는 이러한 상황에서 영국의 無害 통항권 확인을 위한 일종의 위력 시위차 피격시 응사하라는 명령 아래 해협에 진입하였던 것이다.    3주 후 11월 13일, 영국 해군은 소해함을 코르푸 해협에 파견하여 22개 기뢰를 제거하였다. 조사 결과 기뢰는 독일제 GY형 고정 기뢰로 밝혀졌다.

 

영국은 이 기뢰망이 사건 발생 직전에 부설되었고 사고를 야기한 기뢰는 이 기뢰망의 일부라고 주장하였다. 알바니아는 기뢰망이 최근 부설된 것은 인정하였으나 폭파된 기뢰는 이 기뢰망의 일부가 아니라 망실된 부유 기뢰일 수도 있으며 알바니아는 기뢰망을 부설하지도 않았고 폭파 기뢰의 원천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고 반박하였다. 기뢰 부설 주체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피폭 후 영국은 이 사건을 UN 안전보장이사회에 상정하였으며 알바니아는 당시 UN 회원국은 아니었으나 사건 심리에 참가하라는 안보리의 초청을 수락하여 자신의 입장을 개진하였다. 안보리는 양국 정부에게 이 사건을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하라고 권고하였고 1947년 5월 영국은 재판 청구서를 ICJ에 제출하였다. 알바니아는 1947년 7월 ICJ 앞 서한을 통해 ICJ에 회부하라는 안보리 권고를 수락하며 이 사건에 대한 ICJ의 관할권을 인정하였으나 1947년 5월 영국의 재판 신청은 ICJ 헌장상의 규정에 위반된 것이라는 선결적 항변을 제기하였다. ICJ에 회부하기 위해서는 양 당사국의 합의가 필요하나 영국이 이러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재판을 신청하였다는 것이다.

알바니아의 선결적 항변은 재판부에 의해 기각되었으며 재판부는 본안 심리 일정을 당사국에 통지하였다. 본안 심리 개시 직전인 1948년 3월 25일 영국과 알바니아는 ICJ의 관할권을 인정하고 판결 요청 사항을 적시한 특별 약정을 체결하였다. 이 약정에 의해 ICJ에 판결이 의뢰된 사항은 1946년 10월 22일 알바니아 영해 내에서 발생한 폭발 사건과 이로 인한 피해에 대해 알바니아가 국제법상의 책임이 있는지와 10월 22일 영국 함대의 항해와 11월 12일~13일간의 기뢰 제거 작전이 알바니아의 주권을 침해하였는지 여부였다.

 

 

나 주요 쟁점 및 판결

 

1) 선결적 항변

 

    1946년 10월 22일 기뢰 피폭 사건 발생 이후 영국은 이 사건을 UN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하였고 안보리는 UN 헌장 32조에 의거하여 알바니아를 해당 사건 심리에 초청하였다. 알바니아를 이를 수락하여 안보리의 논의에 참가하였으며 안보리는 양국 주장을 청취한 후 1947년 4월 9일 이 사건을 ICJ에 회부할 것을 영국과 알바니아에게 권고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양국은 이를 수락하였다. 영국은 1947년 5월 22일 ICJ에 재판을 청구하였다. 청구서에 영국은 ICJ가 이 사건에 대한 관할권이 있다는 근거로 i) 안보리가 UN 헌장 36조에 의거하여 이 사건을 심리한 후 두 당사국에 ICJ에 회부할 것을 권고하였고, ii) UN 헌장 32조에 의거하여 안보리가 유사한 사건에서 통상의 UN 회원국이 부담하는 의무를 수락하는 조건으로 알바니아가 안보리의 이 사건 심리에 참가하여 줄 것을 초청하였을 때 알바니아가 이를 수락하였으며, iii) UN 헌장 25조에 의거, UN 회원국은 안보리 결정을 수용하고 이행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명시하였다.

 

ICJ가 영국의 재판 청구서 접수 사실을 알바니아에 통지하자 알바니아는 1947년 7월 2일자 서한을 통해 영국의 일방적인 재판 신청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였다. 아울러 이 서한에서 알바니아는 ICJ에 회부하라는 안보리의 권고를 수용하며 이 사건에 대한 ICJ의 관할권을 인정한다는 내용도 같이 적시하였다. 1947년 12월 9일 알바니아는 ICJ에 영국의 일방적인 재판 신청이 절차적 흠결이 있다는 선결적 항변을 정식으로 제기하였다.

 

알바니아의 주장은 안보리 권고는 ICJ 헌장의 조항에 의거하여 해당 사건을 ICJ에 회부하라는 것이었는데 ICJ 헌장 36(1)조는 ICJ 관할권은 회원국이 회부하는 모든 사건과 UN 헌장이나 발효 중인 조약, 협약에 특별히 규정된 문제에 적용된다고 규정하고 있고 헌장 40(1)조는 사건은 특별 약정이나 서면 신청을 통해 ICJ에 접수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이를 준수해야 한다는것이었다. 알바니아는 특정 사건을 ICJ에 회부해야 한다고 규정된 조약이나 협약을 체결한 바 없으므로 결국 ICJ의 관할권 행사를 요청하는 당사국간의 특별 약정을 통해서 이 사건을 ICJ에 회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이 알바니아와 협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재판을 신청한 것은 ICJ 헌장에 의거하여 ICJ에 회부하라는 안보리 권고 결의와 합치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영국이 재판 청구서에 기재한 관할권 근거에 대해서도 알바니아는 i) 1947년 안보리 권고는 그 자체(ipso facto)로 ICJ 관할권이 적용되는' UN 헌장에 특별히 규정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므로 권고 결의가 관할권을 생성하는 것은 아니며, ii) UN 회원국이 ICJ 헌장의 규정에 따라 ICJ 관할권을 정당하고 명백하게 수용하지 않은 채 ICJ 재판정에 출석할 의무가 없는 만큼 안보리의 해당 사건 심리에 알바니아가 '유사한 상황에서 UN 회원국이 부담하게될 의무를 부담’하겠다는 조건으로 참가한 것이 곧 관할권을 수용한 것은 아니며, iii) 안보리의 ICJ 회부 권고가 영국과 알바니아의 동의나 수용 없이 양국을 구속하는 것은 아니라고

 

항변하였다. 알바니아는 안보리의 ICJ 회부 권고 결의를 수용하였으나 결의안에 적시된대로 ICJ 헌장상의 절차에 의거하여 회부한다고 동의한 것일 뿐이며 영국은 알바니아와 특별 약정을 체결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재판을 신청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 알바니아가 제기한 선결적 항변의 골자였다.

 

재판부는 알바니아의 1947년 7월 2일자 서한을 중심으로 심리하였다. 재판부는 이 서한에서 알바니아가 영국의 일방적인 재판 신청에 대해 시비하면서 동시에 영국이 범한 절차적 흠결에도 불구하고 재판정에 출석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언급한 점을 주목하고 알바니아의 입장은 절차적 흠결이 있는 재판 청구서의 수리 가능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권리를 유보(즉,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한 것으로밖에 이해되지 않는다고 지적하였다. 더욱이 이 서한에서 알바니아는 ICJ에 회부하라는 안보리 결의를 전적으로 수용하며 이 사건에 있어 ICJ의 관할권을 수용한다고 적시하였으므로 재판부가 보기에 이 서한은 ICJ 관할권에 대한 자발적이고 시비할 수 없는 수용을 구성한다고 보았다. 재판부는 당사국간의 동의는 ICJ에 관할권을 부여하며 ICJ 헌장이나 재판 규칙 어느 것도 이러한 동의가 특정한 양식으로 표출될 것을 요구하고 있지 않다고 확인하였다.

 

영국의 재판 청구서가 ICJ 헌장 36(1)조, 40(1)조와 합치되지 않게 접수되었다는 알바니아의 주장과 관련하여 재판부는 청구서에 의한 절차 개시는 강제 관할권이 있는 경우에만 가능하고 강제 관할권이 없는 사항에 대해서는 당사국간의 관할권에 관한 특별 협정에 의해서만 절차가 개시될 수 있다고 알바니아가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재판부는 이러한 이해는 관련 규정의 문안과 합치하지 않는다고 지적하였다.

 

ICJ의 재판 규칙은 재판 청구서에 ICJ 관할권 근거를 가능한 한 특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항은 아니며 청구서에 의한 절차 개시는 강제 관할권에 배타적으로 적용되는 것도 아니라고 확인하였다. 재판부는 영국이 1947년 5월 22일 청구서를 제출함으로써 알바니아에게 ICJ 관할권을 수용할 기회를 제공한 것이며 알바니아는 1947년 7월 2일자 서한을 통해 관할권을 수용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재판부는 관할권 합의가 반드시 특별 약정의 사전 체결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PCIJ의 판결도 인용하면서 이 사건의 경우 공동으로 사전에(jointly and beforehand) 체결된 특별 약정 대신, 분리된 순차적인(separate and successive) 행위(즉, 영국의 재판 신청 및 알바니아의 수락 서한) 에 의해 관할권 수용이 실행된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ICJ 회부를 권고한 안보리의 결의 이행을 위해서는 당사자들의 조치가 필요하지만 해당 조치가 반드시 공동으로 시행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특정 사건을 ICJ에 회부하는 방식은 ICJ 작업에 관한 규정에 의해 규율되는 것이므로 이러한 규정에 위배되지 않은 절차를 흠결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언급하였다. 영국의 재판 신청이 ICJ 관련 규정에 어긋난 점이 없다는 것이다.

 

알바니아는 7월 2일자 서한에서 영국이 이 사건을 ICJ에 회부한 방식과 안보리 권고의 구속력과 관련하여 UN 헌장 25조를 언급한 것에 대해 유보 의사를 표명하였으며 이 사건에 대한 ICJ 관할권 수용이 항후 선례를 구성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재판부는 이러한 유보 의사는 ICJ에 대한 사건 회부 방식과 ICJ 강제 관할권에 대한 UN 헌장 25조의 함의에 대한 것이지 이 사건 절차에 대한 것은 아니라고 해석하고 알바니아는 절차적 흠결을 이유로 선결적 항변을 제기할 수 없으며 본안 심리에 관한 ICJ의 관할권을 시비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2) 기뢰 폭발 및 피해에 대한 알바니아 책임 여부

 

     재판부의 조사 결과 코르푸 해협은 1944년 10월 영국 해군이 소해(掃海) 작전을 시행하여 기뢰가 없음을 확인하였고 그 해 11월 안전 항로로 공표되었으며 1945년 1월 영국 해군이 재차 소해 활동을 전개하여 안전이 확인되었다. 이 항로가 안전하다고 판단한 영국 해군은 1946년 5월 15일 순양함 2척을 통과시켰으며 사건 당일 기뢰에 대한 사전 안전 조치를 하지 않고 4척의 함대를 이 항로에 진입시킨 것이다. Saumarez호와 Volage호가 기뢰에 의해 피폭된 위치는 알바니아 영해 내, 소해 작전시 기뢰망이 발견된 지역인 점도 증거로 입증되었다.

 

 

 

재판부는 각종 증거와 증언, 전문가 조사 결과에 의해 폭발한 기뢰가 독일제 GY형 접촉식 고정 기뢰임을 확인하고 알바니아가 주장한 부유 기뢰 가능성을 배척하였다. 1946년 11월 13일 영국 해군이 소해한 22개 기뢰도 동일 기종임이 확인되었다. 알바니아는 22개 기뢰는 사건 발생일인 10월 22일 이후에 부설된 것일 수도 있다고 주장하였다. 폭발된 기뢰가 자신의 영해 내에 부설된 기뢰망에서 유래하지 않은 정체 불명의 기뢰라면 자신의 책임을 면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그러나 알바니아가 이러한 주장을 입증할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고 부설된 22개 기뢰와 동일한 기종의 출처 불명의 기뢰가 1944년 11월과 45년 1월 두 차례의 소해 활동에서 발견되지 않다가 기뢰 부설 인근 지역에서 거의 동시에 2차례 폭발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일축하였다.

 

재판부는 이상의 사실을 토대로 Saumarez호와 Volage호와 접촉하여 폭발한 기뢰는 독일제 고정식 접촉 기뢰 GY형이며 이는 알바니아 영해 내에 부설되어 있는 동일 기종 기뢰망에 속해 있었다고 결론지었다. 영국은 해당 기뢰망이 1946년 5월 15일부터 사건 발생일인 1946년 10월 22일 사이의 기간 중에 알바니아 정부의 묵인과 인지 하에 부설되었다고 주장하고 따라서 기뢰 폭발 피해에 대한 국제적 책임이 알바니아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영국은 해당 기뢰망이 알바니아에 의해 부설되었다는 주장을 강하게 제기하지는 못하였다. 알바니아는 재판부에 제출한 문서를 통해 자신은 해군이 없으며 연안 경비용 소형 보트 수 척만을 보유하고 있을 뿐이어서 기뢰 부설 능력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재판부는 알바니아가 직접 기뢰를 부설하였다는 영국의 주장은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더 이상 심리하지 않았다.

 

영국은 1946년 10월 18일경 GY형 접촉식 기뢰를 탑재한 유고슬라비아 전함 Mljet호와 Meljine호가 코르푸 해협 북부에 있는 Sibenik 항을 출항하여 해협 쪽으로 항해한 정황에 대해 설명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알바니아는 자세한 내용을 아는 바 없다고 밝혔다. 영국은 이 두 척의 유고슬라비아 함정이 10월 22일 이전에 코르푸 해협에 기뢰를 부설하였고 알바니아가 이를 인지하였거나 묵인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영국은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Mljet호와 Meljine호에 기뢰가 탑재되는 것을 목격하였으며 이들 함정은 10월 18일 Sibenik항을 출항하여 수 일후 귀항하였다는 前 유고슬라비아 해군 장교 Karel Kovacic의 확인서(Affidavit)을 제출하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Kovacic의 언급은 재판부에 신원이 통지되거나 직접 접촉하지 못한 제 3자에게 언급한 것으로서 그 주장만으로는 폭발된 기뢰가 이들 함정에 의해 부설되었다는 결정적인 법적 증거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재판부는 주권 국가에 대한 매우 위중한 혐의 주장은 상당한 확실성이 요구되며 영국이 제시하는 증거로는 이러한 확실성이 충족되지 않는다고 확인하였다(판결문 page 17).

 

영국은 유고 함정이 알바니아의 묵인과 인지 하에 기뢰를 부설하였다는 증거로서 같은 공산주의 국가인 알바니아와 유고슬라비아는 1946년 7월 체결된 상호원조조약을 통해 정치, 군사 동맹 관계에 있을 정도로 유착되어 있으며 인근 국가 중 유고슬라비아 외에는 해당 기뢰를 보유할만한 국가가 없다는 점을 제기하였다. 재판부는 정황 증거에 불과한 영국의 주장이 설사 사실로 입증된다고 하여도 확실한 결론에 도달할 수 없다고 기각하였다. 유고슬라비아가 GY형 기뢰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법적으로 입증되지 않았고 알바니아 영해 내에 부설된 기뢰망의 부설 주체는 여전히 불투명하며 상호원조조약 체결만으로는 범법 행위에 가담하였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유고슬라비아는 재판 당사국은 아니었으나 알바니아를 통해 영국의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의 자국 문서를 재판부에 제출하였다.

 

재판부는 이 문서 접수를 거절하지는 않았으나 유고슬라비아가 재판 당사국이 아니므로 이들 문서를 제한이 있는 증거로 접수할 수 밖에 없으며 이들 문서의 증거력에 대한 재판부의 견해를 밝힐 필요는 없다고 언급하였다. 알바니아는 기뢰가 그리이스에 의해 부설되었을 수도 있다고 언급하였으나 재판부는 증거로 뒷받침되지 않은 추론에 불과하므로 더 이상 심리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영국은 기뢰를 부설한 주체를 확인할 수 없다 하더라도 알바니아가 모르는 상태에서 기뢰가 부설될 수는 없다고 주장하였다. 재판부는 알바니아 영해 내에 부설된 기뢰로 인해 영국 항정이 피폭되었다는 사실만으로는 기뢰 부설의 책임을 알바니아에 전가할 수 없지만 국제 관행상 영토, 영해 내에서 불법 행위가 발생한 국가에 대해 설명을 요구할 수는 있다고 확인하였다. 해당 국가가 아는 바 없다는 것만으로 설명의 요구를 회피할 수 없으며 해당 국가는 일정 수준까지는 자신의 재량 하에 있는 수단이나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언급하였다. 그러나 특정 국가가 영토나 영해에 대해 통제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곳에서 발생한 불법행위의 주체를 인지했거나 할 수 있었다거나 또는 불법 행위가 발생한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고 확인하였다. 영토, 영해에 대한 배타적 통제권만으로는 해당 국가의 1차적인(prima facie) 책임이 입증되거나 입증 책임이 해당 국가로 이전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반면 재판부는 영토에 대한 국가의 배타적 통제권으로 인해 불법 행위의 피해 국가는 해당 국가가 불법 행위에 책임이 있다는 직접 증거를 수집하여 제공하는데에 한계가 있으므로 사실과 정황 증거의 추론에 보다 자유롭게 의지할 수 있도록 허락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간접 증거가 상호 연관된 일련의 사실에 근거하고 있고 논리적으로 하나의 결론에 이르는다면 특별히 고려해야 한다고 설시하였다.

 

재판부는 알바니아가 기뢰 부설 사실을 인지하였거나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간접 증거를 통해 입증되는지를 검토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재판부가 주목한 사실은 사건 전후 알바니아의 활동 및 태도, 그리고 알바니아 해안에서 기뢰 부설의 관찰 가능성이었다.

 

첫째 알바니아의 행동과 태도의 경우 1946년 5월 이후 알바니아가 코르푸 해협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있었다는 것은 알바니아도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알바니아는 해협을 통과하는 외국 선박에 대해 주의를 환기하는 외교 공한을 발송하기도 하였으며 1946년 5월 15일에는 이 해협을 통과하던 영국 순양함 Orion호와 Superb호에 대해 경고 사격을 하기도 하였다. 사격 이후 영국에 송부된 알바니아의 외교 공한에는 무허가 통과 선박에 대해 경고 사격하라는 지시가 해안 경비대에 하달되어 있으므로 해협 통과 전에 반드시 허가를 받으라고 주의하고 있었다. 기뢰 부설이 최근에 발생한 것이라는데 대해서는 양측이 인정하였으므로 재판부는 기뢰 부설 작전은 (누가 했는지, 시기가 언제인지 특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알바니아의 코르푸 해협 감시 기간 중에 시행된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기뢰 부설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알바니아의 주장은 신빙성이 없다고 일축하였다.

 

재판부는 1946년 11월 12~13일 영국 해군이 기뢰 제거 작전을 전개하자 알바니아 정부는 UN 사무총장에게 통지문을 발송하여 영국 해군의 알바니아 영해 내 활동을 비난하였을 뿐 보다 더 심각한 주권 침해인 기뢰 부설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고 영국의 기뢰 제거 작전을 통해 자국 영해 내에 기뢰가 부설되어 있었음을 확실히 알게 된 후에도 이처럼 심각한 영토 주권 침해에 대해 사법적인 조사도 시행하지 않은 점을 주목하였다. 재판부는 알바니아의 이러한 태도는 1946년 10월 22일 기뢰 피폭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사실 조사단을 구성한 인접국 그리이스의 태도와 대비된다고 언급하였다. 재판부는 이러한 알바니아의 태도는 기뢰 부설 사실을 몰랐다는 주장과 합치되지 않으며 알바니아가 이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를 비밀로 하려했다는 것이 더 타당해보인다고 판단하였다.

 

둘째 관찰 가능성에 대해 재판부는 해협 진입 항로가 알바니아 해안에 가깝고 알바니아 해안의 언덕에서 해협 전체가 조망될 수 있는 지리적 환경상 기뢰 부설 활동이 알바니아 해안 경비대에 의해 관찰되지 않을 수 없다고 보았다. 재판부는 해협 입구에 기뢰를 부설하는데에는 최소한 2시간 이상이 소요된다는 전문가의 보고를 접수하였으며 이는 기뢰 부설 해역에서 불과 500m 이격된 알바니아 해안 경비 초소 근무자가 목격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라고 보았다. 재판부는 보다 확실한 정보 취득을 위해 전문가를 지정하여 실제 코르푸 해협에서 야음을 이용하여 기뢰 부설 모의 시험을 시행하도록 하였으며 그 결과 무월광 야음에 소등한 시험 선박이 670m~1,000m 視界에서 육안으로 관찰되었으며 선박 동력음은 1,800m 떨어진 지점에서도 청취할 수 있었다고 확인하였다.

 

재판부는 알바니아의 감시 초소 위치 및 근무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기뢰 부설선이 코르푸 해협 남북 어느 쪽으로 진입하여 작업을 시행하였든지 알바니아 이를 적발하지 못했을 수는 없으며 1946년 10월 22일 영국 함정을 폭파한 기뢰는 알바니아의 인지하지 못한 가운데 부설될 수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

 

재판부는 국제 통항에 사용되는 자국 영해 내에 기뢰가 부설되어 있다는 사실을 고지하고 경고하지 않은 것은 국제법상의 의무 위반이라고 판시하였다. 이러한 의무는 전시에 적용되는 접촉식 기뢰 부설에 관한 1907년 헤이그 협정 뿐아니라 인도주의적 고려, 항해의 자유 등 보편적이고 확립된 국제법 기본 원칙에서 유래하는 것이라고 첨언하였다. 알바니아는 기뢰 부설 사실을 고지하거나 경고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알바니아가 고지, 경고하기에 시간이 촉박했을 가능성도 검토하였다. 재판부는 사건 당일 새벽에 기뢰가 부설되었다고 가정하면 모든 선박에 대한 일반적인 고지를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을 수 있으나 영국 함대가 해협에 진입한 시간이 22일 13:00이고 1차 폭발 시간은 14:53이므로 영국 함대를 특정하여 전방에 기뢰가 부설되어 있다는 경고를 하기에는 시간이 충분했다고 판단하였다.

 

이 같은 사실을 종합하여 재판부는 1946년 10월 22일 알바니아 영해 내에서 발생한 기뢰 폭발과 이로 인한 인적, 물적 피해에 대해 알바니아는 국제법상의 책임이 있다고 판시하였다. 영국은 피해 배상액을 결정하여 줄 것을 명시적으로 청구하지 않았으나 재판부는 피해 책임의 판결이 배상액 결정을 수반하지 않는다면 실제적인 효력이 없을 것이라고 언급하고 알바니아는 영국에게 84만 파운드를 배상하라고 결정하였다.

 

3) 영국의 알바니아 주권 침해 여부

 

     ICJ에 의뢰된 또 하나의 판정 요청은 1946년 10월 22일 영국 해군의 기동과 11월 12일~13일 영국 해군의 기뢰 제거 작전이 알바니아의 주권을 침해하였는지 여부이다. 10월 22일 사건 경우 수 개월 전 발생한 포격 사건부터 시작된다. 1946년 5월 15일 코르푸 해협을 북에서 남으로 통과하던 영국 순양함 Orion호와 Superb호는 알바니아 해안 포대로부터 경고 사격을 당하였다. 12~20발의 포탄이 12분간 두 함정 진로 전후에 착탄되었으며 5월 21일 알바니아는 경고 사격 사실을 인정하였다. 영국은 해협 통항은 국제법상 인정되는 무해 통항권이라고 항의하였으나 알바니아는 사전 통보 및 허가 없이는 외국 군함과 상선이 알바니아 영해를 통항할 수 없으며 경고 사격은 국제법상 인정되는 조치라고 반박하였다. 양국간의 수 차례의 외교 공한 교환 후에도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영국은 1946년 8월 2일 공해상 2개 지점 간의 국제 항해 통로가 되는 해협의 통과는 무해 통항권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다시 천명하고 코르푸 해협을 통항하는 영국 군함을 포격할 경우 응사하겠다고 통지하였다. 영국 해군 본부는 지중해 함대 사령관에게 코르푸 해협 통항시 전후 함포를 장전하고 피격시 응사하라고 지시하였다. 해군 본부는 9월 21일 근일 내에 코르푸 해협 통항 계획이 있는지 문의하였고 지중해 함대 사령관은 10월 22일 문제가 된 4척의 함대가 통항할 예정임을 보고하였다.

 

재판부는 알바니아의 사전 허가가 없이 코르푸 해협에 전함을 파송한 행위가 알바니아의 주권을 침해한 것인지에 대해 심리하기에 앞서 국제 관습법상 평시에 모든 국가는 국제 항로로 사용되는 해협에 연안국의 사전 허가를 받지 않고 군함을 무해 통항하게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확인하였다. 국제 협약에 따로 규정되어 있지 않은 이상, 연안국은 이러한 통항을 금지할 권리가 없다고 부연하였다.

 

알바니아는 코르푸 해협이 이러한 원칙이 적용되는 국제 항로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알바니아는 코르푸 해협은 국제 항로로서의 중요성이 크지 않고 공해상 두 지점을 통항하는데 꼭 필요한 항로도 아니며 코르푸 섬과 본토를 왕래하는 연안 항로로 대부분 사용된다고 반박하였다. 재판부는 평시 무해 통항 가능 해협 여부는 교통량이나 국제 항로로서의 중요성 정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공해상 두 지점을 연결하는 지리적 상황과 국제 항해에 이용 여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코르푸 해협이 지리적으로 해협에 해당함은 알바니아도 부정하지 않았고 영국은 1936년 4월 1일부터 1937년 12월 31일까지 국제 선박이 코르푸 해협을 통항한 횟수가 2,884회에 달하며 그리이스, 영국, 유고슬라비아가 정기 항로를 운영하고 있다고 재판부는 확인하였다. 아울러 코르푸 해협이 그리이스와 알바니아의 국경으로서 양국 영해 내에 속해 있으며 그리이스가 코르푸 항 교통 편의와 안전상 코르푸 해협에 특별한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도 참작하였다.

 

이러한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재판부는 코르푸 해협은 평시 통항이 연안국에 의해서 금지될 수 없는 국제 항로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당시 그리이스와 알바니아는 상호 대치 중이었다. 외교 관계는 수립되지 않았으며 그리이스는 알바니아의 연안 일부가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었으며 알바니아는 그리이스의 침공에 대비하여 코르푸 해협을 특별히 경계하고 있었다. 재판부는 이러한 상황에서 알바니아가 외국 군함의 코르푸 해협 통항을 규제할 수는 있다고 공감하였으나 그 방식이 통항 금지나 사전 허가까지 되어서는 안된다고 보았다. 재판부는 이상을 근거로 영국이 사전 허가 없이 군함을 코르푸 해협에 파송함으로써 알바니아의 주권을 침해하였다는 알바니아의 주장을 기각하였다.

 

알바니아는 10월 22일 영국 함대의 통항이 무해 통항이 아니었다는 주장도 제기하였다. 무해 통항이 아니었으므로 영국의 알바니아 주권 침해가 인정된다는 주장이다. 알바니아는 영국 함대의 코르푸 해협 통항은 통상적인 항해가 아니라 정치적인 임무 수행이었으며 수병들을 전투 배치한 상태에서 전투 대형으로 항해하였고 함포의 위치나 무장이 통상의 수준을 넘어선 위력 과시 목적의 항해였다고 주장하였다.

 

재판부는 9월 21일 영국 해군 본부의 지령서에 나타나 있고 재판 과정에서 영국 대표도 인정한 바와 같이 문제의 항해는 단순한 통과가 아니라 알바니아의 태도를 시험하기 위한 항해였다고 규정하였다. 영국 순양함에 대한 경고 사격과 이후의 무해 통항권에 관한 양국의 외교적 대립 이후 영국은 알바니아가 여전히 불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지 여부를 문제의 항해를 통해 확인하고자 한 것이라고 보았다. 재판부는 영국 정부가 채택한 수단이 국제법 요건에 부합하는 한 그 적법성을 시비할 수 없으며 영국 함대의 통항 임무는 부당하게 부인된 권리를 확인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고 알바니아가 부당하게 부인한 통항권 행사를 영국 정부가 자제해야 할 의무는 없다고 인정하였다.

 

재판부는 항해 자체는 적법하므로 항해가 실행된 방식이 무해 통항 원칙에 부합하는지와 이에 관한 알바니아의 주장의 사실 여부를 살펴보았다. 재판부는 영국 함대가 전투 대형으로 기동하였다는 알바니아의 주장은 제출된 증거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하였다. 영국 함정 4척은 일렬 종대 대형으로 코르푸 해협에 진입하였고 전투 대형으로 기동한 것은 1차 폭발 이후였으며 승조원이 전투 배치된 상태로 항진하였다는 주장도 제출된 증거에 의해 배척된다고 확인하였다. 함포 위치도 1946년 8월 10일 해군 본부의 지시대로 전후방을 겨냥하고 있었으나 장전은 하지 않은 상태였음이 증거로 확인되었다. 재판부는 이상의 증거로 볼 때 함포 상태가 무해 통항 원칙상의 위치와 부합되지 않았다는 알바니아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다. 영국은 해당 함대가 피격시 신속 응사 태세를 갖추고 코르푸 해협으로 항진했다고 인정하였으며 재판부는 5월 15일 경고 사격을 당한 만큼 이러한 예방 조치는 합리적이라고 인정하였다. 재판부는 4척의 군함이 즉시 응사 태세를 갖추고 좁은 해협을 일렬 항진한 것은 단순히 알바니아의 태도를 시험하려는 것 이외에 위력을 과시하려는 목적도 있었다고 판단하였으나 영국의 이러한 조치가 알바니아의 주권을 침해한 것은 아니라고 판시하였다.

 

기뢰 피폭 이후 영국 해군은 코르푸 해협에 기뢰가 부설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1946년 11월 12일과 13일 알바니아의 영해 내에서 기뢰 제거 작전(Operation Retail)을 전개하였다. 기뢰 피폭 직후 영국은 소해 작전 개시를 알바니아에 일방적으로통보하였으며 알바니아는 소해 작업이 알바니아 영해 밖에서 수행되지 않는 한 이에 동의할 수 없다고 회신하였다.

 

영국은 11월 10일 소해 작전이 12일에 개시된다고 통보하였으며 알바니아는 영국의 일방적인 결정에 항의하는 서한을 11일 발송하였다. 알바니아는 이 서한에서 영국 해군의 기뢰 제거 필요성은 인정하였으나 정확한 소해 지역 획정을 위해 양국간 공동위를 구성하자고 제의하였고 알바니아의 동의 없이 알바니아 영해 내에서 이루어지는 소해 활동은 알바니아의(사건 이후 영국군의 기뢰 제거 작전) 주권과 영토에 대한 고의적인 침해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고 확인하였다. 영국은 알바니아의 항의를 묵살하고 1112일과 13일 인근 해역에 항공모함까지 배치한 상태에서 소해 활동을 전개하였다.

 

영국은 알바니아의 항의를 묵살하고 소해 작전을 전개한 점과 소해 작전이 무해 통항권 행사라고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 타국의 영해 내에서 다수의 군함을 동원하는 것이 국제법상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은 인정하였다.

 

영국은 그러나 해당 작전은 극도로 긴급하였으며 영국은 타방의 동의 없이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영국이 주장하는 근거는 1945년 11월 체결된 소해 지역 분할 협정이었다. 2차 대전 종전 후 영국, 프랑스, 소련, 미국은 지중해 지역 위원회(Mediterranean zone board)같은 지역별 기뢰 제거 기관을 구성하고 해당 기관으로 하여금 관련 국가에 소해 지역을 할당하도록 하였다. 코르푸 해역은 그리이스에게 할당되었는데 영국은 그리이스로부터 이 해역 소해 작업 허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영국의 주장이 설득력이 없다고 일축하였다. 코르푸 해역은 이미 1944년과 45년에 소해 작업이 수행되어 항해 안전 지대로 확인되었고 따라서 이 해역을 그리이스에 할당한 것과 그리이스로부터 소해 허가를 받았다는 것 자체가 단순히 명목상의 행위라고 보았다. 더욱이 알바니아는 코루푸 해협이 자신의 영해 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이스의 소해 구역 할당에 대해 협의받지 않았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영국이 추가로 제시한 소해 작전의 정당화 사유는 증거 확보였다. 영국은 수년 간 안전 항로였던 코르푸 해협에서의 기뢰 피폭은 매우 수상한 일로서 기뢰 부설 주체나 알바니아 당국이 수거하기 전에 서둘러 물증을 확보해야 했다고 항변하였다. 영국은 개입 권한 이론을 적용하여 범죄 증거를 국제 재판부에 제출하기 위하여 타국 내에 있는 증거를 신속히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재판부는 수용하지 않았다.

 

무력을 사용하는 소위 개입 권한이란 과거 심각하게 남용되었고 현재 국제법상 인정할 수 없는 것이며 최강대국만 활용할 수 있어 국제 정의 실현을 손쉽게 왜곡할 수 있다고 비난하였다.

 

영국은 소해 작전은 자위 조치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재판부는 영토 존중은 국제 관계의 핵심이라고 환기하였다. 비록 알바니아가 기뢰 폭발 이후 책임 수행을 해태하고 지연 외교를 전개한 것이 영국의 소해 작전 수행을 촉발한 정황으로 인정되기는 하지만 재판부는 국제법 준수를 위해 영국의 행위는 알바니아의 주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선언할 수밖에 없다고 천명하였다.

 

알바니아는 영국이 소해 작전에 필요 이상의 무력을 동원하였다고 비난하였으나 재판부는 피폭 경험이 있는 영국이 안전을 위해 상당한 무력을 동원한 것은 이해할만하다고 보았다.

 


1)32. Any Member of the United Nations which is not a member of the Security Council or any state which is not a Member of the United Nations, if it is a party to a dispute under consideration by the Security Council, shall be invited to participate, without vote, in the discussion relating to the dispute. The Security Council shall any down such conditions as it deems just for the participation of a state which is not a Member of the United Nations.

2)The Security Council having considered statements of representatives of the UK and Albania concerning ....... recommends that the UK and Albanian Governments should immediately refer the dispute to the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in accordance with the provisions of the Statute of the Court.

3)25. The Members of the United Nations agree to accept and carry out the decisions of the Security Council in accordance with the present Charter.

4)1. The jurisdiction of the Court comprises all cases which the parties refer to it and all matters specially provided for in the Charter of the United Nations or in treaties and conventions in force.

5)1. Cases are brought before the Court, as the case may be, either by the notification of the special agreement or by a written application addressed to the Registrar. In either case the subject of the dispute and the parties shall be indic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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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글은 산업통상자원부 김승호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이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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