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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Ambatielos 사건(Greece v. UK, 1951. 4. 9. 판결) 본문

3. Ambatielos 사건(Greece v. UK, 1951. 4. 9. 판결)

국제분쟁 판례해설/국제사법재판소(ICJ) 판례 2019.10.16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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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사건 개요 및 배경

 

     이 사건은 영국 정부와 그리이스 조선 업자간에 발생한 선박 건조 및 매매 거래에 관한 분쟁을 영국이 1886년 체결한 영국-그리이스 통상항해조약상의 중재 절차에 회부할 의무가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된 사건이다.

1919년 7월 17일 그리이스 조선업자 Nicolas Ambatielos는 영국 정부와 9척의 증기선을 건조하여 인도하는 계약을 체결하였다. 계약서에는 상세한 구매 대금 지불 조건이 기재되어 있었고 구매자인 영국이 계약 의무를 준수하지 못할 경우 판매자 Ambatielos는 공탁된 보증금을 압류하고 선박은 제 3자에게 판매할 수 있으며 재판매로 인한 손실과 비용은 모두 영국측이 부담하도록 하였다. 판매자측이 계약 의무를 준수하지 못할 경우 영국은 보증금을 이자와 함께 회수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계약서에는 구체적인 선박 인도일이 특정되어 있지 않고 '합의된 시한 내에(within the time agreed)'라고만 기재되어 있었다. 그리이스는 특정 일자가 계약서에 기재되지는 않았으나 계약 협상 과정 중 양측은 특정 일자에 대해 협의하였으며 이 표현은 따라서 합의된 구체적 일자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실제로 협상 과정 중 양측은 서한, 전문 등을 통해 선박 인도일에 대해 상의를 하였으며 Ambatielos가 선박 인도일이 적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계약 파기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자 영국측 대리인은 1919년 8월 Ambatielos와 회동하여 선박 인도일에 합의하였고 이를 메모지에 기재하였다. 그러나 후에 선박 인도와 관련하여 양측의 분쟁이 발생하자 영국측은 메모지에 기재된 일자는 단지 선박 인도 가능일을 시사하는 것뿐이며 법적 구속력이 있는 선박 인도일에 대해 양측이 명시적으로 합의한 바는 없다고 주장하고 Ambatielos가 입은 손실에 대해서 보상을 거부하였다.

 

Ambatielos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해 그리이스 정부의 개입을 요청하였으며 그리이스 정부는 이 사건과 관련된 재판을 1951년 4월 9일 ICJ에 청구하였다. 그리이스가 청구한 재판은 ICJ에 이 사건 해결을 구하는 것은 아니었고 영국은 1886년과 1926년 각각 체결된 영국-그리이스 통상항해조약에 의거하여 이 사건을 위 조약상의 중재 절차에 회부해야 하고 그 판정을 이행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판결해달라는 것이었다.

 

영국은 ICJ는 이 사건을 심리할 관할권이 없다고 반박하고 관할권 존부에 관한 선결적 항변을 제기하였다. ICJ는 이 사건 본안을 심리할 권한은 없으나 이 사건이 1926년 통상조약상의 중재 절차에 회부되어야 하는지 여부를 심리할 관할권은 있다고 판시하였다.

 

 

나. 주요 쟁점 및 판결

 

1) 1926년 통상항해조약의 적용 가능 여부

 

    영국과 그리이스의 입장 차이는 1886년 및 1926년 조약의 해석에 근거한다. 1886년 11월 10일 서명된 영국-그리이스 통상항해조약은 상대방 국민에 대해 통상과 항해에 관한 각종 권리, 특혜, 면제 등을 자국민과 동등하게 부여하며(1조), 제 3국민과 동등하게 대우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2조). 15조에서는 사법 보호 제도 이용상의 동등 대우를 규정하였다. 같은 날 서명된 의정서에는 이 조약의 해석과 집행에 관한 분쟁이 발생할 경우 중재 위원회를 구성하여 그 판정에 따른다고 적시하고 있었다. 영국과 그리이스는1926년 7월 16일 통상항해조약을 새로 체결하였으며 1886년 조약의 핵심 조항인 1조, 2조, 15조, 의정서는 거의 유사한 문장으로 1926년 조약의 1조, 3조, 4조, 29조에 포함되었다.

 

29조는 1926년 조약의 해석 및 집행에 관한 분쟁은 중재에 회부하되 달리 합의하지 않는 한 중재는 당시 상설국제사법재판소에 의뢰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그리이스와 영국은 이 조약을 서명하면서 같은 날에 1886년 조약과 1926년 조약상의 분쟁 해결 처리 방안에 대한 양해 선언서를 별도로 서명하였다. 이 선언서는 1926년 조약은 1886년 조약에 근거한 시비를 침해하지 않으며 1886년 조약에 근거한 시비의 정당성 여부에 대해 양국이 의견을 달리 할 경우에는 1886년 조약 의정서에 언급된 중재 절차에 회부한다고 천명하고 있었다.

 

영국은 ICJ가 이 사건 관할권이 있다면 그 근거는 1926년 조약 29조일 수밖에 없으나 이 조항은 1926년 조약 조항의 해석이나 적용에 국한하여 관할권을 부여할 뿐이며 이 사건은 1926년 조약 발효 이전인 1919년에 발생하였으므로 29조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논리로 ICJ의 관할권을 부인하였다. 그리이스는 이 사건은 영국이 1886년 조약 핵심 조항 1, 2조를 위반한 것이며 이 조항은 거의 동일한 문장으로 1926년 조약에 승계되었으므로 결국 영국은 1926년 조약을 위반한 것이며 따라서 29조에 의거하여 ICJ는 관할권이 있다고 반박하였다.

 

재판부는 그리이스의 이같은 類似 조항 이론을 수용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그리이스의 주장은 1926년 조약 29조에 소급효를 부여하자는 것과 동일한 것인데 1926년 조약 32조는 이 조약이 비준된 이후에 발효된다고 적시하고 있고 소급효를 언급한 조항이 일체 존재하지 않으므로 1926년 조약의 어떠한 조항도 비준일 이전에 발효했다고 볼 수 없다고 단정하였다. 재판부는 또한 1886년 조약의 부속 의정서는 1886년 조약의 해석과 집행에 관련된 분쟁을 일정 기준에 따라 분리하여 따로 언급한 것이 아니라 해석과 집행에 관한 분쟁이면 모두 중재에 회부한다고 규정하였다고 환기하고 그리이스의 주장은 1886년 조약과 관련된 분쟁중 1926년 조약 조항 문안과 유사한 조항의 분쟁은 1926년 조약상의 분쟁 해결 절차를 적용하고 그렇지 않은 분쟁은 1886년 조약 분쟁 해결 절차를 이용한다는 것으로서 1886년 조약상의 분쟁을 분리하려는 것이나 이는 1886년 조약 의정서의 명백한 문장상 정당화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판결문 40-41 page).

 

2) 1926년 양해 선언서

 

     영국은 1926년 조약일에 서명된 선언서는 해당 조약과 같은 날에 서명되기는 하였으나 조약과 별도로 서명된 것이므로 조약과는 별개의 문건이며 조약의 일부도 아니고 선언서의 조항은 조약 29조가 의미하는 1926년 조약의 조항도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선언서가 1926년 조약을 본 조약(this Treaty, the present Treaty)로 기재하지 않고 '오늘 자로 체결된 조약'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보아 선언서 서명 전에 이미 조약이 체결 완료된 것이 확실하며 선언서 어디에도 선언서가 본 조약의 일부분을 구성한다는 언급이 없다는 점도 주장의 근거로 제기하였다. 29조는 1926년 조약의 해석과 집행에 관련된 분쟁은 PCIJ에 중재 의뢰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PCIJ는 ICJ로 승계되었으므로 ICJ가 1926년 조약의 해석과 집행에 관한 분쟁에 대해 관할권이 있게 된다. 1926년 조약 선언서는 1886년 조약에 근거한 시비의 정당성 여부에 대해 양국이 의견을 달리 할 경우에는 1886년 조약 선언서에 언급된 중재 절차에 회부한다고 천명하고 있었으므로 1926년 조약 선언서가 1926년 조약의 일부로 인정되면 1886년 조약에 근거한 시비의 정당성 여부에 관한 시비(즉 이 사건)에 대한 관할권을 ICJ가 행사할 수 있게 된다. 1886년 조약상의 중재를 회피하고 ICJ의 관할권을 부인하려는 영국은 따라서 1926년 조약과 선언서는 별개이며 선언서의 조항은 조약의 조항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다.

 

재판부는 영국이 1926년 조약과 관세율표, 그리고 선언서 전체를 하나의 조약으로 자국 조약집에 등재하였고 국제연맹에도 그리 통보되었으며 그리이스는 조약, 관세율표, 선언서를 일괄하여 그리이스 의회에 비준 요청한 점을 주목하였다. 영국의 비준 요청서의 경우 그리이스보다 더욱 명시적으로 조약문과 관세율표 선언서 전문을 하나의 문건을 구성하는 것으로 기재하였다고 제시하였다. 재판부는 이러한 점에 비추어 선언서가 조약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재판부는 이와 같은 판단이 선언서의 성질이나 의도에 비추어 볼 때에도 타당하다고 인식하였다. 재판부는 만일 선언서가 없었으면 1926년 조약의 발효와 함께 1886년 조약은 일거에 일소되었을 것이나 선언서의 의도는 1926년 조약이 이 같은 방식으로 발효된다고 해석되어 결국 1886년 조약에 근거한 시비나 구제가 침해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재판부는 따라서 1926년 선언서는 해석적인 의미를 갖고 있으며 1926년 조약의 불가분의 일부분을 구성하는 한편 선언서의 조항은 29조가 의미하는 조약의 조항에 포함된다고 판단하였다. 이와 같은 판단의 논리적인 결과로서 선언서의 해석과 집행에 관한 분쟁은 ICJ에 관할권이 있으며 시비의 정당성 여부는 선언서에 명시된 바와 같이 중재 위원회에 의해 해결되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즉 ICJ는 1926년 선언서의 의미에 대한 당사자간 의견 차이 존부를 판단할 관할권이 있으며 의견 차이가 존재한다고 판단할 경우 어느 의견이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본안 심리는 중재 위원회 소관이라는 것이다(42-44 page).

 

영국은 1926년 선언서는 1886년 조약에 근거하고 선언서가 서명되기 이전에 제기된 시비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주장도 제기하였다. 그리이스가 이 사건에 관한 시비를 처음 제기하기 시작한 것은 1939년이었다. 영국은 따라서 이 사건은 1926년 선언서 대상이 아니라고 항변하였다. 재판부는 선언서는 1886년 조약 조항에 근거한 시비(claims based on the provisions of the Anglo-Greek Commercial Treaty of 1886)라고 적용 대상은 특정하고는 있으나 시비 제기 일자(date of formulation of the claims)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이 없다고 환기한 후 영국의 주장대로라면 1886년 조약 위반 사항이나 1926년 조약 체결 이후에 제기되는 시비는 법적으로 구제할 수단이 없이 방치되는 것이라고 지적하였다(45 page).

 

이상의 심리를 토대로 재판부는 Ambetielos가 시비하는 사건의 본안에 대해서는 ICJ가 관할권이 없으나 이 사건을 영국이 중재에 회부할 의무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할 관할권은 있다고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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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글은 산업통상자원부 김승호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이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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