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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Anglo-Iranian Oil Co. 사건 (UK v. Iran, 1952. 7. 22. 판결) 본문

5. Anglo-Iranian Oil Co. 사건 (UK v. Iran, 1952. 7. 22. 판결)

국제분쟁 판례해설/국제사법재판소(ICJ) 판례 2019.10.16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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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사건 개요 및 배경

 

    이 사건은 이란의 석유 국유화 조치에 대해 영국이 ICJ에 제소하였으나 ICJ의 강제 관할권을 인정한 이란의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ICJ의 관할권이 부인된 사건이다.

 

1951년 5월 1일 이란은 석유 국유화 조치를 단행하였다. 그 이전까지 이란 석유 탐사, 개발, 판매는 1933년 4월 29일 이란과 영국-이란 석유공사(이하 AIOC Anglo-Iranian Oil Co.)간에 체결된 양허 계약에 의거하여 AIOC가 독점하고 있었다. 이란은 1951년 5월 26일 이 양허 계약을 파기하였다. 영국은 양허 계약 파기가 이란 내 영국인 보호에 관한 1928년 영국-이란 간 외교 공한, 양허 계약 자체의 조약적 성격에 위반한다고 주장하였다. 1934년 이란-덴마크 우호통상조약상의 대우와도 합치되지 않으며 영국은 1857년, 1903년 영국-이란간 조약상의 최혜국 대우 조항에 의거하여 이란-덴마크 조약상의 대우를 향유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영국은 1951년 5월 26일 ICJ에 재판을 청구하였다. 이란과 영국은 모두 상설국제사법재판소(PCIJ)의 강제 관할권을 수용하고 있었다. ICJ 헌장 36(5)조에 따라 PCIJ의 강제 관할권 수용 선언은 ICJ 의 관할권도 수용한 것으로 간주된다. 이란은 ICJ는 이 사건에 대해 관할권이 없다고 반박하였다. 이란의 PCIJ 강제 관할권 수용서에는 이 수용 선언이 이란 의회에서 비준된 후 체결된 국제 조약이나 협정상의 문제에 관해 PCIJ의 관할권을 수용한다고 적시되어 있는데 영국이 주장하는 문건은 관할권 수용 선언이 비준되기 이전에 체결된 것이므로 이란이 수용한 PCIJ 관할권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 주요 쟁점 및 판결

 

1) PCIJ 관할권 수용 선언서 적용 대상 분쟁

 

    영국은 1940년 2월 28일 상설국제사법재판소(PCIJ) 헌장 36조에 의거, PCIJ의 강제 관할권을 수용하였다. 이란은 1930년 10월 수용 선언서에 서명하였고 1932년 9월 19일 이란 의회에서 비준되었다. 재판부는 자신의 관할권이 36(2)조에 따른 당사국의 관할권 수용 선언에 기반하나 분쟁 당사국 수용 선언의 공통적인 부분에 한정된다고 보았다. 영국의 수용 선언은 이란에 비해 시기적으로는 늦었으나 그 범위는 더 광범위하였고 이란의 PCIJ 관할권 수용 범위는 영국보다 제한적이었다. 재판부는 따라서 당사국 의사가 공통 부분은 이란 선언이고 이를 토대로 관할권 존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란의 PCIJ 관할권 수용 선언서는 이란이 수용한 조약이나 협정의 적용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되는 상황이나 사실에 대해, 수용 선언 비준 이후에 발생하는 모든 분쟁에 대해 PCIJ 강제 관할권을 상호주의에 의거하여 수용한다는 요지로 서술되어 있었다.

 

이란은 and subsequent to the ratification of this declaration은 그 직전의 treaties or conventions accepted by Persia를 수식하므로 자신이 수용한 PCIJ의 관할권은 수용 선언서가 비준된 이후 이란이 체결한 조약이나 협정의 적용과 관련된 문제에 국한된다고 주장하였다. 영국은 and subsequent to the ratification of this declaration은 with regard to situations or facts를 수식하는 것이며 따라서 시기와 관계 없이 이란이 체결한 모든 조약과 협정에 적용된다고 반박하였다.

 

재판부는 문법적인 측면에서만 보았을 때에는 양측의 주장이 모두 일리있으나 재판부가 그 판단을 순수히 문법적인 해석에만 의존할 수는 없고 관할권 수용 당시의 이란 정부의 의도를 고려하면서 해당 문안의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이해(reading)와 조화를 이루는 해석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고 보았다. 재판부는 and subsequent to the ratification of this declaration은 and라는 접속사에 의해 그 직전의 treaties or conventions accepted by Persia와 연결된다고 보는 것이 해당 문안을 자연스럽고 합리적으로 읽는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영국 주장대로 and subsequent to the ratification of this declaration이 상당한 단어구를 가운데 두고 이격되어 있는 with regard to situations or facts와 연결된다고 보기 위해서는 그리 해야 할 특별하고 분명히 확립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영국은 이란 선언서의 해당 문구는 벨기에의 1925년 PCIJ 관할권 수용 선언서 문안과 유사하다는 점을 이유로 제시하였으나 재판부는 이란과 벨기에 선언서의 해당 문안이 동일하지 않고 벨기에 문안을 근거로 이란의 의도를 유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하였다. 재판부는 이란 선언서는 있는 그대로, 실제 사용된 단어에 주목하면서 해석해야 한다고 보고 영국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선언서 서명 당시의 이란 상황에 대해서도 주목하였다. 1927년 5월 이란은 이전 카자르 왕조가 체결한 외국과의 양허 조약을 모두 파기한다고 천명하고 대등한 내용으로 개정하는 협상을 진행 중에 있었다. 1930년 10월 PCIJ 관할권 수용 선언 당시 협정 개정 작업이 마무리되기는 하였으나 일부는 종료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란 정부는 모든 양허 조약이 더 이상 유효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자신의 일방적인 선언의 법적인 효력에 대해서는 불확실한 측면이 있었다.

 

재판부는 이러한 상황에서 이란이 이러한 조약과 관련된 분쟁이 PCIJ에 제소되도록 선언서 문안을 통해 스스로 동의했을리는 없다고 판단하였다. 재판부는 따라서 이란이 PCIJ 관할권을 수용할 때 이전의 양허 조약과 관련된 분쟁을 배제하려고 하였고 선언서는 이러한 의사가 반영되도록 기안되었을 것이라고 추론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선언서의 treaties or conventions를 영국이 주장하는대로 모든 시기에 체결된 조약이나 협정으로 해석하는 것은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제반 사항을 고려할 때 PCIJ 관할권 수용 선언 이전에 체결된 모든 조약이나 협정과 관련된 분쟁은 PCIJ의 관할권에서 제외하려는 것이 이란의 명백한 의사였다고 판단하였다(판결문 106 page).

 

재판부는 이란의 이와 같은 의사는 이란 의회가 제정한 PCIJ 관할권 수용을 인정하는 국내법 규정에서도 확인된다고 언급하였다. 이란 의회는 선언서 서명 이후 비준되기 전인 1931년 6월 14일 PCIJ 관할권 수용에 일정 조건을 부과하는 국내법을 채택하였으며 부과된 조건 중의 하나는 '선언이 비준된 후에 정부가 체결할 조약이나 협정의 집행과 직, 간접적으로 관련되는 상황이나 사실로부터 발생하는 분쟁'이라고 적시하고 있었다.

 

재판부는 이 구절이 PCIJ 관할권 수용 당시의 이란 정부의 의사를 결정적으로 확인하여 준다고 보았다. 영국은 이 법령은 이란 국내 문건이고 타국에는 알려지지 않았으므로 증거로 채택할 수 없다고 시비하였으나 재판부는 이 법은 합법적인 이란의 입법 기관에 의해 제정되었고 20년 이상 타국에게 접근 가능한 상태였으며 재판부가 이를 관할권 존부의 근거로 활용할 수는 없으나 다툼이 있는 사실, 즉 선언 당시의 이란이 의사를 확인할 근거가 되기에는 충분하다고 논박하였다.

 

이상의 고려를 토대로 재판부는 이란의 PCIJ 강제 관할권 수용 선언은 이 선언이 비준된 후 이란이 체결한 조약 또는 협정의 적용과 관련된 분쟁에 국한된다고 결론 내렸다(107 page).

 

2) 이란의 PCIJ 관할권 수용 선언의 적용 가능 여부

 

    영국은 설사 이란의 PCIJ 관할권 수용 선언이 이 선언이 비준된 후에 체결된 조약이나 협정과 관련된 분쟁에만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영국이 시비하는 이란의 행위는 이 선언 비준 후에 이란이 체결한 조약이나 협정의 위반과 관련된 것이므로 여전히 ICJ가 관할권을 갖는다고 주장하였다. 영국은 1934년 2월과 1934년 4월 및 1937년 3월에 각각 체결된 이란-덴마크, 이란-스위스, 이란-터어키 우호통상조약에는 체약국 국민은 타방 체약국 영토 내에서 통상적인 국제법 원칙 및 관행에 따른 인적, 물적 대우를 받으며 법과 당국의 항구적인 보호를 향유한다고 규정되어 있다고 환기하였다.

 

영국은 1857년 3월 영국과 이란간에 체결된 조약과 1903년 2월 영국-이란간 통상 협정에 적시된 최혜국 대우 조항에 의거하여 위 3개국과의 조약에 기재된 보호 조항을 원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영국은 이란이 동등한 대우를 영국민에게 부여할 의무가 있으며 영국의 AIOC와의 양허 계약을 파기하고 석유를 국유화한 것은 이 조항 위반이며 이들 3개 조약은 모두 이란의 PCIJ 관할권 수용 선언이 비준된 이후에 체결된 것이므로 PCIJ 관할 대상이라고 개진하였다.

 

재판부는 수용하지 않았다. 선언서에 기재된 '조약과 협정'은 이란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는 국가가 이란과 체결한 것이지 이란이 제 3국과 체결한 것까지 포함하지 않는다고 일축하였다. 또한 재판부는 영국이 이란과 체결한 조약상의 최혜국 조항을 원용하여 이란이 제 3국과 체결한 협정상의 대우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영국이 이란과 체결한 조약을 원용할 자격이 있어야 하나 이미 이란의 PCIJ 관할권은 해당 선언이 비준된 이후에 체결된 조약이나 협정에 국한된다고 판시하였으므로 비준 이전인 1857년과 1903년에 체결된 조약을 영국이 원용할 수 없다고 지적하였다.

 

재판부는 이란이 1857년, 1903년 조약상의 의무에 구속되기는 하지만 영국이 이들 조약을 PCIJ 관할권을 성립시키기 위해 활용할 자격은, 이미 이들 조약이 선언서의 규정에 의해 배척되었으므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인하였다. 영국은 PCIJ가 고려해야 할 문제는 어느 조약이 영국에게 특정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조약이 분쟁의 대상인지 여부라고 반박하였으나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분쟁 대상이 되는 것은 1934년 이란-덴마크 간 조약이 아니라 이 조약과 관련된 1857년, 1903년 조약의 적용 문제라고 확인하고 영국의 주장을 기각하였다.

 

영국은 재판부에 대해 덴마크는1934년 이란-덴마크 조약 적용에 관한 분쟁을 PCIJ에 회부할 수 있는 반면 최혜국 대우 조항으로 보호됨에도 불구하고 영국이 1934년 조약 적용에 관한 문제를 PCIJ에 회부할 수 없다면 영국은 최혜국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 아니냐고 시비하기도 하였으나 재판부는 1857년, 1903년 조약의 최혜국 대우 조항은 PCIJ 관할권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점을 주목할 뿐이며 만일 덴마크가 1934년 조약에 관한 사항을 PCIJ에 제소한다면 이는 이 조약이 이란의 PCIJ 관할권 수용 선언이 비준된 이후에 체결되었기 때문이지 최혜국 대우와는 무관하다고 설시하였다.

 

3) 양허 계약의 조약적 성질 보유 여부

 

    1901년 영국 기업인 William D'Arcy는 이란 영토의 3/4에 해당하는 지역 내의 석유, 가스 탐사, 개발, 수송, 판매에 관한 독점권을 매입하는 양허 계약을 체결하였다. 1908년 D'Arcy는 드디어 상업성이 있는 유전을 발견하였으며 체계적인 개발을 위해 AIOC를 설립하였다. D'Arcy에게 이란 내 석유 독점 개발권을 헐값에 넘긴 양허 계약은 체결 직후부터 국민적인 공분을 샀으며 1908년 막대한 유전이 발견되자 이란 정부에 대한 비난은 더욱 격화되었다. 급기야 1932년 11월 이란 정부는 기존 양허 계약을 취소하였으며 영국은 이란과의 양자 협의가 진전이 없자 이 문제를 당시 국제연맹 이사회에 회부하였다. 1933년 국제연맹의 주선으로 AIOC와 이란은 새로운 양허 계약을 체결하기 위한 교섭에 들어 갔으며 결국 1933년 4월 29일 AIOC의 독점 개발 지역을 축소하고 매년 최소 75만 파운드를 이란 정부에 지불하되 60년 양허 기간을 보장받는다는 내용의 새 양허 계약에 합의하였다.

 

영국은 1933년 4월 29일 체결된 이란과 AIOC간 양허 계약이 비록 국가와 회사간의 계약이기는 하나 국제연맹의 중재에 의해 체결된 것이므로 조약으로서의 성질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이란의 석유 국유화 조치는 이 양허 계약의 조약적 성질을 위반한 것이므로 ICJ 관할 대상이라는 주장을 제기하였다. 1932년 이란의 PCIJ 관할권 수용 선언이 비준된 이후에 체결되었다는 점도 강조하였다. 재판부는 양허 계약이 이중적 성격을 보유하고 있다는 영국의 주장을 배척하였다. 재판부는 이 계약은 정부와 외국 기업간의 계약일뿐이며 영국은 체결 주체도 아니고 이란은 이 계약에 의거하여 영국에 대해 실행을 주장할 일체의 권리나 의무가 없다고 확인하였다. 이 계약은 이란과 AIOC간의 관계를 규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어떠한 방식으로든 영국과 이란과의 관계를 규율하지 못한다고 언급하였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관할권 문제는 이 양허 계약이 국제연맹의 주선에 의해 교섭되고 체결되었다는 사실에 의해 아무 영향을 받지 않으며 국제연맹에 이 문제를 제기한 영국의 행위는 자국민 보호를 위한 외교적 보호권을 행사한 것으로서 AIOC가 만족하는 새로운 양허 계약이 체결됨으로써 외교적 보호권 행사는 당초의 목적을 달성하여 종결된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재판부는 국제연맹의 심리 중 이란은 영국에 대해 아무런 서약이나 약속을 한 바 없으며 양허 계약 체결 사실이 국제연맹에 보고되었다 하여 계약상의 조건이 이란과 영국간의 조약상의 조건으로 전환되는 것도 아니라고 확인하였다(112 page).

 


1) 5. Declarations made under Article 36 of the Statute of the Permanent Court of International Justice and which are still in force shall be deemed, as between the parties to the present Statute, to be acceptances of the compulsory jurisdiction of the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for the period which they still have to run and in accordance with their terms.

 

2) The Imperial Government of Persia recognizes as compulsory ipso facto and without special agreement in relation to any other State accepting the same obligation. that is to say, on condition of reciprocity, the jurisdiction of the Permanent Court of International Justice, in accordance with Article 36, paragraph 2, of the Statute of the Court, in any disputes arising after the ratification of the present declaration with regard to situations or facts relating directly or indirectly to the application of treaties or conventions accepted by Persia and subsequent to the ratification of this declaration, with the exception of : 이하 생략

 

3) In respect of all disputes arising out of situations or facts relating, directly or indirectly, to the execution of treaties and conventions which the Government will have accepted after the ratification of the Decla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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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글은 산업통상자원부 김승호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이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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