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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Rights of USA Nationals 사건(France v. US, 1952. 8. 27. 판결) 본문

6. Rights of USA Nationals 사건(France v. US, 1952. 8. 27. 판결)

국제분쟁 판례해설/국제사법재판소(ICJ) 판례 2019.10.16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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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사건 개요 및 배경

 

    이 사건은 1950년 당시 프랑스령 모로코에 거주하고 있는 미국 국민이 향유할 수 있는 특권과 면제의 범위, 구체적으로는 외국 상품 수입 금지령의 적용 여부, 포괄적인 영사 관할권 행사 가능 여부, 미국 정부 동의 없이 모로코 법령 적용 가능 여부, 상품에 대한 소비세 납부 의무 여부가 쟁점이 된 사건이다.

 

1948년 12월 모로코 국왕이 프랑스를 제외한 외국 상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칙령을 반포하자 미국은 서구 열강간 경제적 동등 대우를 규정한 1906년 Algeciras 조약 등에 저촉된다고 반발하였으며 미국은 영국과 스페인이 모로코에서 향유했던 포괄적인 특권과 면제를 향유할 수 있으므로 미국민에 대해서는 제한 없이 영사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미국은 모로코 법령은 미국 정부의 동의가 없는 한 미국민에게 적용할 수 없으며 미국 상품에 부과된 소비세를 환급하여 줄 것을 주장하였다. 이에 프랑스는 모로코 내에서 미국민이 향유할 수 있는 특권 면제의 범위에 대해 판단하여 줄 것을 1950년 10월 ICJ에 요청하였다. 당시 모로코는 프랑스 보호령이었다.

 

이 사건의 배경에는 모로코에 대한 서구 열강의 오랜 침략과 착취의 역사가 있다. 오스만 터어키의 지배력이 약화되자 17세기말 모로코 지역에는 Alaouite라는 별도의 왕조가 수립되어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하였다. 19세기초 오스만 터어키가 이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할 수 없을 정도로 약화되자 이내 스페인, 프랑스 등 인접 유럽 국가가 본격적으로 진출하여 Alaouite 왕조와 각종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여 식민 지배적인 제도(capitulatory regime)을 수립한 후 각종 이권을 확보하고 차별적인 권리와 면제를 보장받기 시작하였다.

 

이 사건에 주로 인용된 것이 1856년에 체결된 영국-모로코 조약, 1861년의 스페인-모로코 조약, 1836년 미국-모로코 조약 등이다. 영, 독, 불, 미 등 12개 서구 열강은 모로코에서 상호간의 분쟁을 방지하고 합동하여 모로코 왕조를 압박하기 위해 1880년 마드리드 조약을 체결하기도 하였다. 1830년대 이후 특히 프랑스는 매우 의욕적으로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하였고 프랑스와 소위 entente cordial이라는 동맹 관계에 있던 영국은 모로코를 프랑스 세력권으로 인정하였다.

 

스페인도 묵인하여 모로코에서의 프랑스 입지는 한층 강화되었으나 뒤늦게 식민지 쟁탈전에 합류한 독일은 모로코에서의 지분 확보 또는 타 식민지 확보를 위한 협상 입지 강화를 위해 모로코에 대한 진출을 강화하여 프랑스와 긴장 관계에 돌입하였다. 1905년 독일 황제는 모로코를 방문하여 모로코 지원 의사를 표명하고 반 프랑스 분위기를 고취시키자 프랑스와는 전운이 감돌게 되었다(1차 모로코 위기). 결국 프랑스는 독일이 주장한 국제 회의 개최 제안을 수용하여 1906년 4월 스페인 Algeciras에서 14개국이 참가한 국제 회의가 개최되었고 Algeciras 조약이 체결되었다.

 

독일의 기대와는 반대로 이 회의에서 독일의 입장을 지지한 나라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뿐이었으며 이탈리아와 러시아는 물론 영국과 미국마저도 프랑스를 지지했다. 1906년 4월 7일에 조인된 알헤시라스 조약은 서구 열강이 자문하는 모로코 경찰 및 세관 설립, 유럽 은행에 대한 특권 부여, 은행권 발행, 유럽인의 토지 소유권 인정 등이 적시되었고 참가국간 차별 없는 경제적 동등성이 확인되었다. 이 사건에서 미국이 주로 인용한 개념이다.

 

프랑스는 모로코에 대한 진출을 더욱 확대하여 1911년 4월 모로코 내에 다수의 군대를 파견하기에 이르렀다. 독일은 이에 항의하여 모로코 연안에 군함을 출동시켰다(2차 모로코 위기). 독일은 모로코에서의 프랑스의 우월적 지위를 인정하는 대신 프랑스령 콩고를 양도받기를 희망하였다. 영국의 중재로 양국간 거래가 성사되어 독일은 프랑스가 모로코를 보호령으로 삼는 것을 묵인하기로 하였다. 최대의 장애가 사라지자 프랑스는 1912년 모로코를 프랑스 보호령으로 하는 보호 조약(Fez 조약)을 강압적으로 체결하였다. 프랑스는 스페인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하여 모로코 북부와 남부를 스페인이 보호령으로 삼도록 양해하였으며 스페인

은 1914년 두 차례의 선언을 통해 1861년 모로코와의 조약을 통해 확보한 포괄적인 영사 관할권 등각종 특권과 면제를 프랑스령 모로코에서는 포기한다고 확인하였다. 영국은 1856년 모로코와의 조약을 통해 유사한 특권을 부여 받았으나 1937년 이를 포기하였다. 미국은 이 사건에서 자신은 1836년 모로코와 체결한 조약의 최혜국 대우 조항을 통해 영국과

(1906년 Algeciras 조약 서명) 프랑스와 같은 포괄적인 영사 관할권을 향유한다고 주장하였다

 

1906년 Algeciras 조약 체결국들은 1912년 Fez 보호 조약 체결 후 Algeciras 조약에 명기된 각종 특권과 면제를 프랑스령 모로코에서 행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미국은 그렇지 아니하였다. 이는 미국이 이 사건에서 Algeciras 조약상의 권리가 미국에 대해 계속 적용된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되었다.

 

1912년 Fez 보호 조약에 의거하여 프랑스령 모로코 내에 있는 외국인은 자국 영사의 재판 관할권이 아니라 프랑스 감독하에 운영되는 모로코 법원의 관할 하에 놓이게 되었다. 미국은 관행적으로 누려 온 포괄적인 영사 관할권을 프랑스와 모로코의 묵인 아래 계속 행사하고 있었으나 1948년 모로코 국왕이 반포한 외국 상품 수입 금지령을 미국이 무시하자 프랑스는 차제에 모로코 내에서의 미국민이 향유할 수 있는 특권과 면제의 구체적인 범위에 대해 법적으로 확인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배경 아래 1950년 10월 28일 프랑스는 ICJ에 재판을 청구하게 된 것이다.

 

 

 

나. 주요 쟁점 및 판결

 

1) 1948년 12월 30일 모로코 국왕 칙령

 

    1939년 9월 9일 모로코 왕은 칙령을 통해 프랑스령 모로코로의 외국 상품 수입을 금지하였으나 구체적인 이행 방법은 프랑스 총독에게 일임하였다. 프랑스 총독은 프랑스와 프랑스령 알제리, 프랑스 식민지, 프랑스 위임통치 지역산 상품에 대해서는 수입 금지 조치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공표하였다(1939년 9월 10일 총독령).

 

프랑스 총독은 1948년 3월 11일 총독령을 발표하여 이전의 수입 금지 조치는 향후 원산지를 불문하고 포괄적으로 적용하지 않는다고 발표하였다.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1948년 12월 30일자 칙령은 이 1948년 3월 11일 총독령을 취소하고 프랑스 및 프랑스 식민지 상품의 수입만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1939년 9월 총독령을 복원한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 상품을 포함한 외국 상품은 프랑스령 모로코로의 수입이 금지된 반면 프랑스 및 그 식민지 상품의 수입은 제한 없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미국은 1948년 12월 30일자 국왕령은 각종 조약에 의해 미국에 부여된 권리를 침해한다고 주장하였다. 재판부는 미국이 제시한 각종 조약의 내용을 살펴보았다. 우선 재판부는 1906년 4월 7일 체결된 Algeciras 일반 조약(General Act of Algeciras)의 서문에 모로코 Sultan의 주권과 독립 보장, 영토 보전, 일체의 불평등이 없는 경제적 자유 보장이 적시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재판부는 불평등이 없는 경제적 자유는 당시에 존재했던 통상과 경제 문제에서의 동등 대우에 견주어서 고려해야 한다고 보았다. 당시 모로코는 주요국과 체결한 통상 협정상의 최혜국 대우 조항을 통해 타국과의 동등 대우를 보장하고 있었다.

 

Algeciras 조약 체결 전인 1905년 7월 8일 프랑스와 독일은 외교 공한을 통해 Algeciras 협정 서문에 적시된 3대 원칙을 향후 모로코와의 관계에 있어서 수용한다고 확인하였다. 재판부는 따라서 불평등이 없는 경제적 자유 원칙은 Algeciras 조약 이전에 이미 수립되었고 조약의 서문에 기재됨으로써 다시 확인된 것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상황에 비추어 보았을 때 재판부는 이 원칙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구속적인 성격을 의도하고 있는 것이 명백하다고 판단하였다.

 

1912년 3월 30일 모로코에 프랑스 보호령을 설치하려는 프랑스-모로코간 조약에도 이 경제적 자유 원칙은 수정 없이 포함되었으며 모로코 내 프랑스 보호령 설치에 관한 프랑스와 독일간의 1911년 11월 4일자 조약에서 프랑스는 모로코 내의 경제 문제에 있어서 경제적 동등성을 보장하고 열강간의 차별 대우를 방지한다는 조항이 포함되었다. 미국을 제외한 Algeciras 조약 체결국은 1911년 프랑스-독일간 조약을 준수하여 모로코 내에 있어서의 경제적 동동 대우 원칙을 수용하였다.

 

프랑스는 미국의 동의를 확보하기 위해 1911년 11월 3일자 미 국무부 장관 앞 공한을 통해 1911년 불-독 조약을 언급하면서 프랑스는 모로코가 열강 국민들을 차별 대우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확인하였으며 1918년 11월 14일 또다른 공한을 통해 모로코에서의 상업적 동등성의 혜택은 비단 최혜국 대우 조항에서 발원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Algeciras 조약과 1911년 불-독 조약에 명시된 경제적 동등성 조항에서도 확인된다고 선언하였다. 재판부는 이처럼 다양한 사실을 통해 미국에 대한 모로코 내에서의 상업적, 경제적 동등성은 모로코뿐만 아니라 보호국인 프랑스에 의해 보장된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모로코가 비록 프랑스의 보호령이기는 하였어도 모로코가 국제법상 국가로서의 주체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은 프랑스도 인정하였다. 1912년 프랑스-모로코 보호 조약은 보호국으로서 프랑스의 권리를 적시하고 있었으나 경제 분야에서는 아무런 특권이 프랑스에 부여되지 않았다. 프랑스에 대한 특권은 Algeciras 조약의 불평등이 없는 경제적 동등성 원칙과 양립하지도 않았을 터이다. 프랑스가 미국에 송부한 1918년 11월 14일자 공한은 Algeciras 조약의 경제적 동등성 원칙에 의거하여 모든 국가는 동등 대우를 받을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고 명시하고 있었다. 재판부는 이러한 점에 비추어 1948년 12월 30일 총독령은 프랑스 상품과 여타 국가 상품의 대우를 차별하는 것이므로 Algeciras 조약과 합치되지 않으며 미국은 프랑스와 동등한 대우를 주장할 수 있다고 보았다.

 

재판부는 이러한 결론은 미국민은 모로코가 기독교 열강에게 부여한 특권을 동등하게 향유할 수 있다고 명기한 미국-모로코간 1836년 9월 16일자 조약 24조를 통해서도 도출할 수 있다고 확인하였다. 재판부는 미국은 이 최혜국 대우 조항에 의거하여 모로코 프랑스 조계에서의 외국 상품 수입 문제에 관해 프랑스에 유리한 차별 대우를 반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판단하였다(판결문 181-186 page).

 

2) 미국의 영사 관할권 범위

 

   프랑스가 제기한 또다른 쟁점은 모로코에서의 미국의 영사 관할권 범위였다. 1912년 3월 30일 Fez 보호 조약에 의거하여 프랑스령 모로코에는 보호령 법원이 설치되어 외국인에 대해 모로코 법을 적용하여 재판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보호령 법원은 프랑스 자문관이 조력을 제공하고 프랑스의 지도와 감독을 받기는 하나 모로코 법원이었다. 미국민도 이 보호령 법원의 재판을 받을 수 있었다. 이에 대해 미국은 자국민은 영사 관할권에 의거하여 미국민간의 모든 소송은 물론 미국인이 피고가 되는 모든 소송은 미국 영사의 재판을 받을 뿐이라고 항변하였다.

 

미국은 미국의 영사 관할권은 1836년 조약에 의해 미국민간 발생하는 모든 민형사 사건에 적용되며 미국민이 피고가 된 모든 사건에 대한 영사 관할권은 최혜국 대우 조항과 관습에 의해 취득되었다고 주장하였다. 프랑스는 모로코 내 미국민의 특권은 1836년 9월 16일 미국-모로코간 조약 20조-21조(영사 관할권)에 국한할 뿐이며 영사 관할권에 대해 24조 최혜국 대우 조항은 원용할 수 없다고 반박하였다.

 

재판부는 영사 관할권에 관한 미국의 권리 범위를 판단하기 위해서 이전에 체결된 각종 조약을 3개 항목을 분류하여 살펴보았다. 첫째 조약군은 17세기부터 19세기 기간 중 모로코와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덴마크, 스페인, 미국, 오스트리아, 사르디니아, 벨기에, 독일이 체결한 통상 관련 양자 조약들이었다. 재판부는 이들 조약에 기재된 영사 관할권 부여 방식을 특정 또는 포괄적인 관할권을 부여한 것, 매우 제한된 관할권을 부여한 것, 영사 관할권에 대해 별도의 언급 없이 최혜국 대우 조항을 통해 이전에 다른 국가에 부여된 특권을 부여한 것 등 3 종류로 분류하였다. 재판부는 최혜국 대우 조항을 통해 영사 관할권을 부여할 수 있다는 점을 과거의 조약을 통해 확인한 것이다.

 

두번째 조약군은 1880년 마드리드 조약, 1906년 Algeciras 조약 등 다자 조약이다. 유럽 열강과 모로코간의 양자 조약의 내용이 최혜국 대우 조항에 의해 사실상 동등하게 되어 버린 결과, 권리가 남용되게 이르자 열강은 다자 조약을 통해 자신들의 모로코 보호권을 제한하고 이전의 양자 조약 등에 의해 약화된 모로코 Sultan의 권한을 일정 부분 회복시켜 줄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열강은 서로를 견제하면서 이 필요성을 실현하기 위해 일련의 다자 조약을 체결하였다.

 

세번째 조약군은 모로코 내 보호령 설치에 관한 조약들이다. 대표적인 것이 프랑스- 모로코간 모로코 보호 조약(1912년 Fez 조약)이다. 이 조약에 따라 모로코는 외형상의 주권 국가 지위는 유지하였으나 프랑스는 모로코의 대외 관계 등 주요 분야에 있어 모로코의 명의로 주권 행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프랑스는 외국인에 대한 입법, 사법, 행정상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으며 모로코가 체결한 이전의 조약상의 권리 의무도 승계하였다. 이 조약에 의해 설치된 보호령 법원은 외국인에 대한 사법 평등성을 보장하게 되어서 영사 관할권을 부여한 이전과는 상황이 사뭇 달라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프랑스는 프랑스 보호령(조계) 내에서 열강이 기존의 영사 관할권 행사를 포기하도록 교섭하기 시작하였으며 미국을 제외한 열강이 영사 관할권을 포기하였다.

 

미국의 모로코에서의 영사 관할권은 1836년 9월 16일에 체결된 미-모로코간 조약 20조, 21조에 근거하고 있었다. 쟁점이 된 것은 20조 영사 관할권이 적용되는 미국민간 분쟁의 범위였다. 미국은 민형사 모든 분쟁이라고 주장한 반면 프랑스는 이 조항의 dispute라는 용어는 민사 사건을 의미한다고 반박하였다. 형사 사건은 범죄를 다루는 것인데 범죄란 국가에 반하는 위반 행위이지 사인간의 분쟁(dispute)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재판부는 20조, 21조의 문안은 1787년 미국과 모로코간에 체결된 조약의 문안과 동일한 점을 확인하고 그 당시부터 1836년 즈음까지 프랑스가 체결한 조약에는 dispute가 어떠한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다수의 조약 문안을 검토하였다. 그 결과 재판부는 프랑스도 dispute의 의미를 외국과 체결한 조약에서 민형사 사건을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하였음을 확인하고 1787년, 1836년 조약 모두 dispute는 민사, 형사상의 분쟁을 의미한다고 판단하였다. 재판부는 또한 민사와 형사 사건간의 명확한 구분이 모로코에서는 아직 발달되지 않은 상태였다는 점도 지적하고 1836년 조약의 20조의 분쟁(dispute)은 민형사 모두를 의미한다고 보고 미국민의 타 미국민에 대한 형법 위반 사건 역시 미국의 영사 관할권에 속한다는 점을 확인하였다(189 page).

 

3) 최혜국 대우 조항에 근거한 미국의 영사 관할권 범위

 

    미국은 미국민이 피고가 되는 모든 사건에 대해 미국이 영사 관할권을 갖고 있는 점은 1836년 조약의 최혜국 대우 조항(14조, 15조)에 의해서도 확인된다고 주장하였다. 미국은 이 조항을 통해 서구 열강이 모로코와 체결한 여타 조항을 원용할 수 있으며 1856년 영국-모로코 조약, 1861년 스페인-모로코 조약이 민형사 사건 모두에 대해서 영국과 스페인의 포괄적인 영사 관할권을 부여하고 있으므로 미국도 이와 같은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는 위 조약을 영국은 1937년, 스페인은 1914년 이미 종료하였으므로 1937년 이후 미국은 최혜국 대우 조항을 통해 원용할 타 조약상의 대우 자체가 존재하지 않게 되었으며 실제로 1937년 이후 미국 외에는 프랑스령 모로코에서 영사 관할권을 행사한 국가가 없다고 반박하였다. 프랑스는 영국이 1937년 영사 관할권을 포기한 이후 (1856년 조약 종료) 미국은 더 이상 1836년 미-모로코 조약의 최혜국 대우 조항을 통하거나 영사 관할권을 규정한 여타 협정상의 조항을 통해서도 1836년 조약의 20조, 21조에 규정된 범위를 초과하는 영사 관할권을 주장할 권리가 없다고 강조하였다.

 

이에 대해 미국은 여섯 가지의 반론을 제기하였다. 첫째로 모로코가 서구 열강의 최혜국 대우 권리를 인정했다는 1880년 마드리드 조약 17조를 제시하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영국과 스페인이 모로코와 체결한 조약상의 영사 관할권 조항을 해당 조약이 모두 종료된 후에도 미국이 최혜국 대우 조항을 통하여 원용할 수 있다는 의미를 이 조항에서 찾아 볼 수 없다고 기각하였다. 미국은 모로코와 같은 국가와의 조약에서의 최혜국 대우 조항의 의미는 국가간의 비차별 동등 대우를 설립 유지하는 수단이 아니라 일종의 참조 문안으로 보아야 하며 최혜국 대우 조항으로 원용할 수 있었던 권리와 특혜는 항구적으로 부여된 것이며 이러한 권리, 특혜의 원천 조항이 폐지, 종료된 후에도 향유하거나 행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재판부는 미국의 주장은 지금까지 거론된 조약 당사자의 의도와 합치되지 않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재판부는 마드리드 조약은 1621년부터 1892년까지 모로코가 서구 열강과 체결한 조약을 검토해서 성안한 것이며 이 검토 대상이 된 조약들은 최혜국 대우 조항의 의도가 관련국간에 항시적인 비차별 동등 대우를 설립, 유지하려는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고 확인했다. 나아가 마드리드 조약 17조는 명백하게 동등성 유지에 기반하고 있다고 추가하였다. 재판부는 미국의 주장은 동동성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며 차별을 영구화하는 것이라고 기각하고 프랑스령 모로코에서 자국의 영사 관할권 범위를 확장 해석하려는 미국의 판결 요청을 지지하지 않았다(192 page).

 

미국의 두번째 반론은 1856년 영국-모로코간 조약 종료를 통한 영국의 영사 관할권 포기는 프랑스령 모로코에 한정된 것이고 스페인령 모로코에는 계속 적용이 되는 한편 미국은 모로코를 하나의 국가로 취급하고 있으므로 영국이 스페인령 모로코에서 행사하고 있는 영사 관할권을 최혜국 대우 조항을 통해 원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재판부는 스페인령 모로코에서의 영국 영사 관할권의 존부 및 범위는 재판부가 판단할 사항은 아니며 미국의 주장이 최혜국 대우 조항의 의도(관련국가 항구적인 비차별 동등 대우 수립 및 유지)와 상치되는 것만으로 미국의 주장을 기각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하였다.

 

미국의 세번째 반론은 스페인의 프랑스령 모로코에서의 영사 관할권 포기는 프랑스와 스페인간의 양자 협의일 뿐 당초 영사 관할권을 부여한 모로코가 참여하지 않았으므로 스페인의 모로코 내 영사 관할권은 법적으로는 계속 유효하고 미국이 최혜국 대우 조항을 통해 이를 원용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1912년 3월 30일 Fez 보호 조약이 체결된 후 프랑스와 스페인은 1912년 11월 27일 별도의 양자 조약을 체결하여 프랑스가 모로코를 보호령으로 하는 것을 스페인이 묵인하는 대신 프랑스는 모로코의 북부 지중해 해안과 남부 대서양 해안 지대를 스페인의 영향권(사실상 지배, 통제)으로 인정하기로 하였다. 프랑스, 스페인 양국은 1914년 3월과 11월 두 차례의 선언을 통해 모로코의 상대방 지배 지역에서의 영사 관할권 및 기타 영토 외에서 누리던 특권(extraterritorial rights)을 포기한다고 각각 선언하였다. 프랑스는 1912년 Fez 보호 조약 체결 이후 모로코에 대한 보호국으로서의 지배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1906년 Algeciras 조약 체결국을 대상으로 과거 이들이 모로코에서 향유하였던 각종 차별적, 특혜적 권리(capitulatory regime)를 포기하게 하는 교섭을 전개하였다. 모로코에 대한 영향력이 가장 컸던 스페인의 동의를 확보하기 위해 대신 프랑스는 모로코 북부, 남부 지역을 사실상의 스페인 보호령으로 인정하였다.

 

미국은 1912년 조약이나 1914년 선언 모두 모로코를 배제한 채 프랑스와 스페인 두 국가가 독단적으로 시행한 것으로서 스페인이 포기했다는 특권은 원래 모로코가 부여한 것인만큼 법적으로는 유효하며 미국은 이를 최혜국 대우 조항을 통해 원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프랑스는 1912년 스페인과 체결한 조약은1912년 Fez 보호 조약이 부여한 외교 대행권, 조약 체결권에 의거하여 프랑스가 모로코를 위해 체결한 것이며 Fez 조약 1조는 프랑스가 스페인의 지리적 위치와 모로코 해안의 영토 보유에 관한 스페인의 이해를 인정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1912년 11월 체결한 스페인과의 조약은 모로코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며 따라서 스페인의 영사 관할권 포기는 법적, 사실적으로 종결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재판부는 스페인이 프랑스령 모로코에서 영사 관할권 등 특권 면제를 포기한 1914년 3월 선언과 프랑스가 스페인령 모로코에서 영사 관할권 등 특권 면제를 포기한 1914년 11월 선언 중 포기한다는 표현 renounces claiming의 의미부터 살펴 보았다. 즉 당사국의 의도가 식민 제도(capitulatory regime)의 각종 권리와 특혜를 항구적으로 포기한다는 것인지 사법 동등성이 보장되는 한 한시적으로 행사하지 않겠다는 것인지의 여부를 판단하고자 하였다. 재판부는 taking into consideration the guarantees of judicial equality….는 통상적이고 자연적인 의미상 권리와 특혜를 포기하게 된 고려 사항을 서술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며 조건부 포기를 의도할 때 통상 사용되는 문구는 아니라고 보았다.

 

재판부는 renounces claiming은 따라서 차별적인 권리와 특혜를 영구히 포기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견해는 프랑스가 여타 열강의 프랑스령 모로코 내의 관할권 및 영토 외적 권리를 포기하게 하기 위하여 마련한 여타 선언이나 약속 등을 고려할 때 확실시 된다고 판단하였다. 재판부는 프랑스가 열강과 이러한 목적으로 체결한 문건이 20개가 넘으며 그 중 17개가 (프랑스령 모로코에서의) 차별적 권리와 특혜를 완전히 철폐한다는 의미로 renounces claiming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1916년 7월 31일 주미 프랑스 대사가 미 국무부 장관에게 보낸 공한에도 동일한 표현(relinquishes its claim to all the rights and privileges grouwing out of the Capitulation regime…)이 있음을 제시하고 이미 그 당시 프랑스는 enounceh its claim(불어로는 enounce a reclamer로 동일)을 차별적 권리와 특혜를 폐지하는 의미로 사용했다고 확인하였다.

 

재판부는 이러한 상황에서 프랑스와 스페인은 renounces claiming(enounce a reclamer)라는 표현을 모로코에서의 차별적 권리와 특혜를 완전히 양도(surrender)하거나 포기(renunciation)한다는 의미로 사용했음이 분명하다고 판단하였다. 재판부는 따라서 1914년 3월 7일 선언을 통해 스페인은 프랑스령 모로코에서 모든 관할권과 영토 외적 권리 및 1861년 스페인-모로코 조약으로 확보한 차별적 권리와 특혜를 모두 양도, 포기하였다고 결론내렸으며 미국이 최혜국 조항을 이용하여 1861년 조약을 통해 스페인이 취득하였던 차별적 권리와 특혜를 원용할 수 있다는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다.

 

미국의 네번째 주장은 모로코에 존재했던 광범위한 영사 관할권은 1880년 마드리드 조약에 의해 확인되는 것이며 이 조약 체약국인 미국은 최혜국 조항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영사 관할권을 행사할 권리를 자동적으로 취득하였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1880년 마드리드 조약이 광범위한 영사 관할권을 상정하고 있기는 하나 여타 조항이나 조약의 목적과 범위 등과 독립하여 자동적으로 체약국에게 권리로서 부여한다는 명시적인 조항은 없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재판부는 마드리드 조약은 서문에서 보호권 행사(주로 열강의 외교단 및 고용원, 가족에 대한 모로코의 보호 의무를 의미)와 그와 관련된 특정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고 조약의 목적과 범위를 적시하고 있으므로 이 범위를 초과하는 해석은 수용할 수 없으며 미국의 주장은 조약의 급격한 변경과 추가를 포함하는 것이므로 용인할 수 없다고 일축하였다(196 page).

 

다섯째로 미국은 1906년 Algeciras 협정은 모로코에 대한 열강의 식민지적 제도(capitulatory regime)와 그에 따른 영사 관할권을 내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하며 협정의 여러 조항의 시행을 위해서는 영사 관할권이 전제되어야 하므로 모로코에서의 열강의 영사 관할권은 Algeciras 협정에 의해 인정 및 확인된 것이라는 주장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재판부는 Aleciras 협정의 일부 조항은 특정한 범위나 특정 국가와의 영사 관할권을 전제하고 있기는 하다고 보았다. 일례로 미국이 모로코와 체결한 1836년 조약 20조 및 21조에 근거하여 미국이 보유한 영사 관할권은 여타 국가의 영사 관할권 포기와 관계 없이 미국에게 유효한 것이기는 하나 미국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Algeciras 협정이 광범위한 영사 관할권을 내포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는 없다고 단언하였다. 이러한 해석은 협정 체결 12개 국가의 기존 조약상의 권리 관계를 변형시켜 Algeciras 협정에 근거한 새롭고 자율적인 권리 관계를 창출하는 것인데 협정 체결국이 이를 의도하였다는 점이 회의 준비 문서는 물론 협정 서문에서도 확인되지 않는다고 개진하였다(198-199 page).

 

미국의 여섯째 근거는 관습과 활용이었다. 미국은 모로코에서의 광범위한 영사 관할권은 서구 열강에 의해 오랫동안 관습적으로 행사되어 왔고 모로코가 이를 동의 내지 묵인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재판부는 미국의 주장을 1787년부터 1937년까지의 기간과 1937년 이후의 기간으로 나누어 살펴 보았다. 재판부는 첫째 기간 동안 미국의 영사 관할권은 관습과 활용에 기반하고 있다는 미국의 주장과 달리 조약상의 권리라고 확인하였다.

 

즉 미국의 모로코 내 영사 관할권은 미국-모로코간 체결된 1787년 조약과 1836년 조약, 그리고 여타 열강이 체결한 조약상의 권리를 최혜국 대우를 통해 원용함으로써 향유된 조약상의 권리이지 관습과 활용에 근거한 것은 아니라고 지적하였다. 1937년 영국이 영사 관할권을 포기한 이후 미국이 관습과 활용에 근거하여 광범위한 영사 관할권을 보유하였다는 주장은 증거로서 입증이 되지 않는다고 일축하였다. 재판부는 미국과 프랑스는 미국의 영사 관할권 범위에 대해 합의하고자 노력하였으나 어느 일방도 자신의 법적인 입장에서 후퇴하지 않았음이 확인되며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이 미국인이 관련된 모든 민형사 사건에서 영사 관할권을 (이 사건 발생시까지) 행사해온 것은 모로코 당국이 묵인한 잠정적인 상황일 뿐이라고 판단하였다.

 

이상의 판단에 따라 재판부는 미국의 프랑스령 모로코 내에서의 영사 관할권은 1836년 미국-모로코 조약 20조, 21조와 Algeciras 협정 조항에 적시된 범위에 국한되며 그 이상의 영사 관할권은 1937년 협정에 따라 영국이 프랑스령 모로코에서의 모든 차별적 권리와 특혜를 포기함과 동시에 종료되었다고 판시하였다(201 page).

 

4) 미 정부 동의 없는 모로코 법령 미국민 적용 불가 여부

 

    미국은 모로코 법령을 모로코 내 미국민에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미 정부의 사전 동의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하고 1948년 12월 30일 포고령은 미 정부가 동의한 바 없으므로 모로코 내 미국민에게는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재판부는 미국이 주장하는 소위 동의권이 조약상의 근거가 없으며 관습, 관행에 근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하고 미국의 주장을 기각하였다.

 

5) 1948년 2월 28일 모로코 국왕 칙령

 

    미국이 시비하는 또다른 조치는 모든 상품에 대해 소비세를 부과한다는 1948년 2월 28일자 모로코 국왕령이었다. 이 칙령은 모로코로 수입되거나 모로코 내에서 제작, 생산되었는지 여부와 관계 없이 모든 상품에 대해 일정액의 소비세를 부과하였으며 외국 상품에 대해서는 통관시에 징수하였다 미국은 특별히 납부 의무가 적시된 조세를 제외하고 미국민은 일반적인 면세권을 조약에 의해 보장받고 있으며 미국이 동의하지 않은 조세 징수는 불법이라고 주장하고 미국이 1948년 2월 28일 칙령 적용에 동의한 1950년 8월 15일까지 미국민이 납부한 소비세를 환급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미국이 근거로 제기한 조약상의 근거는 영국-모로코 1856년 조약 4조, 스페인-모로코 1861년 조약 5조였다.

 

이들 조항은 각각 영국민과 스페인 국민이 모로코의 조세로부터 면제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미국은 1836년 미-모로코 조약의 최혜국 대우 조항에 의거하여 동등한 대우를 향유할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였다. 미국은 모로코와 같은 국가와 맺은 조약의 최혜국 대우 조항은 잠정적이거나 (원용하고자 하는 조약에) 의존하는 권리가 아니라 항구적으로 내재화되고 원용의 원천이 된 조약과 독립하여 향유할 수 있는 권리라고 주장하였다. 1856년, 1861년 조약의 면세권은 1836년 미-모로코 조약의 최혜국 대우 조항을 통해 미국에게도 부여되었으며 1836년 조약에 내재화되어 비록 원 조약인 1856년, 1861년 조약이 종료되었어도 계속 존재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미국의 논리는 영사 관할권 시비 심리시 이미 기각된 것이라고 일축하였다. 면세권을 부여한 원 조약이 종료, 폐기되었다면 최혜국 대우 조항을 통해 이러한 권리를 더 이상 원용할 수 없다고 단정하였다. 재판부는 1856년 조약은 1937년 7월 29일 영국-프랑스 조약에 의해 폐지되었고 1861년 조약상의 특권은 1914년 3월 7일 프랑스-스페인 선언에 의해 포기되었다는 점을 환기하고 미국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다(205 page).

 

미국은 마드리드 조약과 Algeciras 협정의 당사국으로서 (최혜국 대우 조항을 통해서가 아니라) 독립적으로 조세 면제권을 주장할 수도 있다고 항변하였다. 해당 조약은 체결 당시 존재했던 면세권을 확인하고 (조약 內로) 포함한 것이며 후에 여타 서구 열강은 마드리드 조약 및 Aleciras 협정을 포기하였으나 미국은 포기하지 않았으므로 이러한 권리를 계속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마드리드 조약과 Algeciras 협정이 당시 존재하고 있던 면세권을 확인하고 포함했다는 전제부터 동의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미국이 두 조약내의 연관된 조항을 근거로 면세권이 조약상의 권리로 존재한다고 단순히 추론하고 있을 뿐 미국민이 모로코의 조세권으로부터 면제된다는 법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일축하였다(206 page).

 

미국은 1856년 영국-모로코 조약 3조, 7조, 8조, 9조의 면세 조항을 1836년 미-모로코 조약의 최혜국 대우 조항을 통해 원용할 수 있으므로 미국은 1948년 칙령상의 소비세 납세 의무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재판부는 1856년 조약의 해당 조항은 모로코로 수입되거나 모로코로부터의 수출품, 모로코 항구간의 이동 상품에 대한 면세 조항인 반면 1948년 칙령은 프랑스령 모로코로 수입되거나 모로코 내에서 제작, 생산되었는지 여부와 상관 없이 모든 상품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것으로서 1856년 조약에 명시된 특정한 조세와 같이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비록 이 세금이 항구에서 징수된다고 해서 모든 상품에 부과된다는 본질적인 성격이 바뀌는 것은 아니고 1856년 조약에 언급된 세금과는 그 성질이 다르다는 것이다(206-207 page).

 

6) Algeciras 협정 95조의 해석

 

   미국은 1948년 칙령은 Algeciras 협정 95조 관세 부과 조항 위반이라는 주장을 제기하였다. 95조는 관세 산정을 위한 수입품의 가격 평가(관세 평가라고 한다)는 관세 및 보관료를 제외한 상품의 현금 도매가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미국은 이 조항에 의거하여 모로코에 수입되는 미국 상품의 관세 평가는 해당 상품의 미국 내 구매가에 운송료를 더한 가액이고 모로코 세관 도착 이후 발생하는 모든 비용(즉 관세나 보관료)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석해야 하며 수입 상품의 모로코 시장 내 거래 가격을 기준으로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Algeciras 조약 위반이라고 주장하였다. 미국은 1948년 2월 28일 칙령은 수입품에 대해 통관시 소비세를 징수하므로 소비세는 사실상 관세이고 1948년 칙령상의 소비세는 모로코 시장 가격을 기준으로 부과되므로 이는 관세와 보관료를 관세 평가시 제외해야 한다는 Algeciras 협정 위반이라는 것이며 따라서 미국은 이 소비세를 납부할 의무가 없다는 주장이다. 프랑스는 95조의 의미는 관세 평가를 위한 가액은 통관을 위해 제시된 시간과 장소에서의 해당 상품의 가액으로 한다는 것일뿐이라고 반박하였다.

 

재판부는 Algeciras 협정 95조가 제시하고 있는 관세 평가 요소는 현찰 도매가 기준, 세관 도착시 기준으로 관세 평가 시간 및 장소 확정, 관세와 보관료 제외, 손상으로 인한 가치 하락분 공제라는 4가지로 정리될 수 있으나 (미국과 프랑스가 주장하는) 두 해석이 모두 가능하다고 보았다. 특히 ‘관세와 보관료 제외(free from customs duties and storage dues)’는 수입 상품의 원 시장 가격에 운송료를 포함한 가액이 관세 평가 기준액된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수입이 된 시장에서의 거래가에서 이미 통관 당시에 납부했을 관세, 보관료를 공제하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고 보았다.

 

재판부는 95조가 관세 평가를 규정한 유일한 조항은 아니며 여타 유관 조항과 Algeciras 협정 준비 문서 등을 종합하여 검토한 결과 프랑스령 모로코 세관은 수입품에 대한 관세 평가를 95조 4개 요소, 수입자의 신고 내용, 프랑스령 모로코 내에서의 현찰 도매가, 원산지 가격에 운송료 및 기타 부대 비용 산입액, 모로코 관세 평가 위원회가 공표한 관세율표 중 하나를 기준으로 시행할 수 있으며 이들 기준 중 우선 순위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모로코 세관은 위 기준을 재량에 따라 적용할 수 있으나 Algeciras 협정의 경제적 동등성 원칙에 입각하여 모든 수입 상품에는 그 원산지나 국적을 불문하고 동일한 방식을 차별 없이 합리적으로 선의에 따라 적용해야 한다고 확인하였다. 결국 미국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은 판결이다.

 


1) Treaty on the Right of Protection in Morocco,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벨기에, 덴마크, 영국, 프랑스, 이태리, 네덜란드, 스페인, 포르투갈, 스웨덴, 노르웨이, 미국, 모로코가 체결국이다.

 

2) 20. If any of the citizens of the United States, or any persons under their protection, shall have any dispute with each other, the Consul shall decide between the parties; and whenever the Consul shall require any aid, or assistance from our government, to enforce his decisions, it shall be immediately granted to him.

 

3) 21. If a citizen of the United States should kill or wound a Moor, or, on the contrary, if a Moor shall kill or wound a citizen of the United States, the law of the Country shall take place, and equal justice shall be rendered, the Consul assisting at the trial; and if any delinquent shall make his escape, the Consul shall not be answerable for him in any manner whatever.

 

4) 17 The right to the treatment of the most favored nation is recognized by Morocco as belonging to all the powersrepresented at the Madrid conference.

 

5) The Government of the French Republic will come to an understanding with the Spanish Government regarding the interests which the latter Government has in virtue of its geographical position and territorial possessions on the Moroccan coast.

 

6) (1914년 3월 7일 선언) Taking into consideration the guarantees of judicial eqiiality offered to foreigners by the French Tribunals of the Protectorate, His Catholic Majesty's Government renounces claiming for its consuls, its subjects, and its establishmerits in the French Zonc of the Shereefian Empire all the rights and privilcges arising out of the regime of the Capitulations….

 

7) (1914년 11월 17일 선언) Taking into consideration the guarantccs of judicial eqiiality offered to foreigners by the Spanish Tribunals in the Protectorate, the Government of the French Repuhlic hereby renounces claiming for its consuls, its subjects and its establishments in the Spanish Zone of the Shereefian Empire, all the rights and privileges arising out of the regime of the Capitulations…...

 

8) 마드리드 조약 12조는 농업세, 13조는 출입세 납부 규정인데 미국은 농업세, 출입세는 명시적인 납부 조항이 있으나 여타 조세는 없으므로 이는 여타 조세 납부는 면제되는 것이라고 주장

 

9) 95. The import and export duties shall be paid cash at the custom house where liquidation has been made. The ad valorem duties shall be liquidated according to the cash wholesale value of the merchandise delivered in the custom-house and free from customs duties and storage dues. Damages to the merchandise, if any, shall be taken into account in appraising the depreciation thereby cau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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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적인 이용 및 변경은 금지됩니다. 위 조건을 위반할 경우 저작권 침해가

성립되므로 형사상, 민사상 책임을 부담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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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ogl.or.kr/info/licenseType4.do

 

※ 위 글은 산업통상자원부 김승호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이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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