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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Minquiers and Ecrehos 사건(France v. UK, 1953. 11. 17. 판결) 본문

8. Minquiers and Ecrehos 사건(France v. UK, 1953. 11. 17. 판결)

국제분쟁 판례해설/국제사법재판소(ICJ) 판례 2019.10.16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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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사건 개요 및 배경

 

    이 사건은 영국과 프랑스 해협 사이에 있는 두개의 암초군 Minquiers와 Ecrehos의 영유권이 양국 중 어느 국가에 있는지가 쟁점이 된 영토 분쟁이다.

 

이들 암초군은 모두 2, 3개의 거주 가능한 작은 섬과 다수의 암초로 구성되어 있으며 Minquiers는 영국령 Jersey 섬 남방 9.8 해리, 프랑스 본토 해안 북방 16. 2해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프랑스령 Chausey 섬에서는 8 해리 이격된 지점이다. Ecresho는 Jersey섬 동북방 3.9해리, 프랑스 해안 6.6해리 지점에 위치하고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 해협에는 Jersey, Guernsey, Chausey 등 일련의 거주 가능한 섬이 있다(Channel Islands).

 

영국과 프랑스는 이들 암초군이 중세부터 자국 영토였으며 영유권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영국은 1066년 프랑스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이 영국을 침공할 때 문제의 암초군을 포함하여 Channel Islands가 영국령이 되었고 노르망디는 1204년 프랑스의 Philip Ausustus왕이 무력으로 회복하였으나 Channel Islands는 여전히 영국 지배하에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프랑스는 1204년 노르망디 회복시 노르망디 해안에 있는 Chausey 섬까지 프랑스가 회복하였으며 이들 암초군은 Chausey 섬과 함께 프랑스 영토가 되었다고 반박하였다.

 

1950년 12월 29일 영국과 프랑스는 이 문제를 ICJ에 회부하기로 합의하는 특별 약정을 체결하였고 영국은 이를 근거로 1951년 12월 5일 ICJ에 재판을 신청하였다. 재판부에 의뢰된 심판 요청은 이들 두 암초군의 영유권이 프랑스, 영국 중 어느 나라에 있는지 결정하여 달라는 것이었다.

 

 

 

나. 주요 쟁점 및 판결

 

1) 역사적 연원

 

    영국은 1066년 노르망디공의 영국 침략 이후 이들 암초군이 영국령이었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4건의 중세 조약과 문건을 제시하였다. 그것은 영국왕이 (노르망디 공이라는) 프랑스의 봉건 영주 자격으로 소유하고 있는 봉토의 범위에 관한 것 등이었으나 재판부는 그 내용이 불분명하고 암초군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이를 근거로 영유권에 소재에 관한 의미있는 판단을 도출하기가 부적합하다고 판단하였다.

 

영국은 Channel Islands의 주요 구성 도서와 그에 부속된 기타 도서가 함께 언급된 다수의 중세 문건도 영유권의 근거 자료로 제출하였다. 영국 John왕이 Piers des Preaux라는 영국 남작에게 Jersey, Guernsey, Alderney 섬을 봉토로 하사한다는 1200년 1월 14일자 칙령과 3년 후 Piers des Preaux 남작이 Ecrehos 암초군을 Val-Richer 수도원에 봉헌한다는 서한에 이 암초군이 영국 왕으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명기되었다는 것 등이었다. Jersey, Guernsey 섬과 그에 부속된 기타 도서 관리 책임을 특정 관리에게 부여한다는 1258년과 1360년의 국왕 칙령도 있었다.

 

재판부는 이들 문건과 1066년부터 1204년까지 기간 중 Channel Islands를 포함한 전체 노르망디 지역이 영국 지배 하에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함께 고려할 때 이들 암초군이 영국령이라고 강하게 추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인정하였다. 암초군의 지명이 특정하여 적시되지 않은 것은 그 중요성이 미미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위와 같은 점만으로는 암초군 영유권에 대한 확정적인 결론을 도출할 수 없으며 영유권 문제는 궁극적으로 소유와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증거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고 확인하였다(판결문 55 page).

 

프랑스의 영유권에 대한 주장은 영국 왕은 동시에 노르망디 공작이라는 프랑스의 봉건 영주이며 Channel Islands를 포함한 노르망디 지역은 프랑스 왕의 봉토라는 점에 기원을 두고 있었다. 프랑스는 1202년 4월 28일 프랑스 법원이 노르망디 공(동시에 영국 왕)의 봉토 전체를 몰수한다는 판결을 제시하였으나 영국은 영국 왕에 대한 노르망디공이라는 봉건 직위는 명목적인 것이었을 뿐이며 1202년 판결이 실제 집행되지도 못했다고 반박하였다.

 

재판부는 다툼이 있는 역사적 사실을 판단하는 것이 재판부의 역할도 아니고 설사 노르망디(및 Channel Islands)가 원래 프랑스의 봉토였다고 인정하더라도 그 사실은 1204년 이후 역사적 변천을 거치는 동안 의미가 없어졌으며 또다른 법적으로 유효한 소유권으로 대체되었다는 점이 입증되지 않는 한 현 시점에서 아무런 법적인 효력을 발생시키지 못한다고 보았다. 1202년 판결이 실제 집행되지도 못했지만 설사 판결 당시 특정한 법적인 효력 발생을 의도하였다고 인정한다 하여도 7세기나 지난 현 시점에서 판결의 법적 효력을 다시 부활시키는 것은 어느 견지에서 보아도 합리적인 법의 적용이라고 볼 수 없다고 설시하였다. 재판부는 영국이 두 암초군에 대한 영유권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이들 암초군은 1204년 프랑스의 노르망디 수복 이후 계속 프랑스 영토로 보아야 한다는 프랑스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1204년 이후 프랑스와 영국간의 수많은 전쟁과 강화를 통해 Channel Islands의 영유권이 변천되었으므로 1204년 노르망디 수복에 대해 프랑스가 주장하는 법적인 효력을 인정하기가 어렵다고 확인하였다. 재판부는 (영유권 판단에 있어)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중세의 역사적 사실로부터 도출된 간접적인 추론이 아니라 암초군의 소유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증거라고 단언하였다(57 page).

 

2) 1839년 어업협정

 

    영국과 프랑스는 1839년 8월 2일 어업협정을 체결하여 Channel Island 인근에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였다. 프랑스는 Minquiers와 Ecrehos가 이 구역 내에 소재하나 영유권과는 관련이 없으므로 1839년 8월 2일 이후 각국이 이 암초군에서 행한 행위는 영유권의 증거로 상대국에 대해 제기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재판부는 프랑스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우선 1839년 공동어로구역은 어로 활동에 관한 것이지 (공동어로구역 내 섬과 같은) 육지 사용과는 무관하며 당사국이 어업협정 체결 이후의 활동을 토대로 이 사건 암초군에 대한 영유권을 표출하지 못하게하는 효과를 갖는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재판부는 해당 암초군의 영유권 소재가 명백한 경우에도 당사국은 이들을 포함한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할 재량이 있으며 공동어로구역에도 불구하고 당사국은 영유권을 표출하는 1839년 어업협정 체결 후 행위를 근거로 영유권을 주장하거나 획득할 수 있다고 보았다. 1839년 이후 행위를 배제해야 한다는 프랑스의 주장은 Ecrehos에 대해서는 1886년에, Minquiers에 대해서는 1888년에 영유권을 공식적으로 주장한 프랑스 자신의 행위와도 상충된다고 지적하였다.

 

 

3) 결정적 기일

 

   이 사건 암초군의 영유권 분쟁의 결정적 기일(critical date)에 관해 영국은 양국이 ICJ 재판 회부에 합의한 특별 약정 체결일인 1950년 12월 29일이라고 보았다. 해당 암초군의 영유권에 대해 양국이 오랜 세월 동안 의견의 일치를 보지는 못했지만 구체적인 분쟁으로서 확립(crystallized)된 것은 그 날짜라는 것이다. 반면 프랑스는 1839년 8월 2일 어업협정 체결일이 결정적 기일이며 이 날짜 이후의 행위는 영유권 보유의 근거로서 활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재판부는 어업협정 체결일에 해당 암초군 영유권에 관한 분쟁이 발생하지는 않았으며 양 당사국이 문제된 해역에서 배타적인 어로권에 대해 다투어 오기는 했으나 (어업협정에서) 이 문제를 암초군의 영유권 문제와 결부시키지 않았다고 확인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판부는 어업협정 체결이 영유권과 관련된 증거를 수락 또는 배척하는 효과를 가져야 할 이유는 없으며 프랑스가 1886년과 1888년 암초군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기 전까지는 영유권에 관한 (법적인 의미의) 분쟁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는 1886년 또는 1888년을 결정적 기일이라고 결정하지도 않았다. 재판부는 이들 암초와 관련된 양 당사국의 행위가 영유권 분쟁이 발생하기 훨씬 이전부터 점진적으로 발생하여 왔으며 그 후에도 중단없이 유사한 방식으로 계속되어 온 상황에서 1886년과 1888년 이후 발생한 모든 사건을 배제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하였다.

 

영국은 1867년 체결된 영국-프랑스간의 또 다른 어업협정 37조에 영국 도서 또는 영국은 Jersey, Guernsey, Alderney 등과 그 부속 도서를 포함한다고 정의되어 있으며 1859년 영국-프랑스 잠수함 송신 협정, 1843년 영국 해양 어로법에도 유사한 규정이 있다고 주장하였으나 재판부는 부속 도서라는 표현에 Minquiers와 Ecrehos가 포함된다고 양국이 의도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영국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다(57-60 page).

 

4) Ecrehos 영유권 심리

 

   영유권 판단을 위해서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간접적인 추론이 아니라 직접적인 증거가 중요하다고 지적한 재판부는 영국이 제출한 Ecrehos에 대한 영유권 보유 증거와 프랑스의 반론을 심리하였다. 영국은 1203년 Piers des Preaux 남작이 Ecrehos를 Val-Richer 수도원에 봉헌(frankalmoin)할 때 그 섬이 1200년 영국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봉토라고 적시했다는 점을 들었다. 프랑스는 봉헌하였으므로 Ecrehos는 Preaux 남작이 영국 왕으로부터 봉토로 하사받은 Channel Islands의 일부분이 아니며 Ecrehos를 봉헌받은 수도원은 1204년 프랑스의 노르망디 수복과 함께 프랑스 령이 되었다고 반박하였다. 재판부는 영국이 제출한 중세 문서에 근거하여 봉헌이란 소유권을 이전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점유(tenure)의 개념으로서 명목상 Preaux 남작의 봉토 지위는 유지하나 그 사용권 및 그로부터 유래하는 수익을 수도원이 행사, 독점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영국은 Preaux 남작의 봉토인 Channel Islands가 1203년 몰수되어 영국 왕이 지명하는 관리가 관할하였고 당시 Ecrehos에 작은 수도원이 있어서 수도사가 Jersey 섬에서 시행된 재판과 관련하여 세 차례 소환되었던 기록과 밀을 세금으로 납부하였던 기록을 제출하였다. 재판부는 당시 Jersey섬과 Ecrehos간에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는 것은 인정하였다. 암초 위 작은 수도원에 밀을 납세케 하자 수도원이 폐쇄되었으며 Jersey 섬과의 밀접했던 관계도 중단되었다고 보았다.

 

재판부는 19세기 들어 Jersey 섬과 Ecrehos간에 밀접한 관계가 주로 굴 채취를 이유로 다시 생성되었다고 보았다. 영국(Jersey 섬 당국)이 Ecrehos에 행정, 입법권을 행사한 근거로 제출한 자료에 대해 증거 능력이 있다고 인정하였다. 재판부는 아래와 같은 사실에 입각하여 볼 때 Ecrehos에 대하여 영국(Jersey 섬 당국)이 상당한 기간에 걸쳐 지방 행정 관할권을 통상적으로 행사해온 점이 인정된다고 보았다.

 

  • Ecrehos에서 범죄를 저지른 Jersey 섬 주민에 대해 관할권이 Jersey 섬으로 한정된 왕립 재판부가 심리 다수 진행(1826, 1881, 1883, 1891, 1913, 1921)
  • 관할권이 Jersey 섬으로 한정된 Jersey 치안 당국이 Ecrehos에서 발견된 변사체에 대한 검시 실시 사례(1859, 1917, 1948)
  • 1820년경부터 Jersey 주민이 Ecrehos에 주택 건설 및 거주한 사실
  • Ecrehos 거주민이 Jersey 성당의 신도 명부에 기재되고 세금을 납부한 사실
  • Ecrehos 거주민 소유 어선이 Jersey항의 선적 기록부에 1872년 등재되고 이 어선에 대한 어업 면허가 1882년 취소된 사실
  • Ecrehos에서 행해진 부동산 거래 계약서가 소유권 증명을 위해 Jersey 섬 등기부에 등기된 다수 사례(1863, 1881, 1884)
  • 1884년 Jersey 세관 분소가 Ecrehos에 설치되고 Jersey 세관 당국의 조사(census) 범위에 Ecrehos가 명기되고 조사를 위해 세관원이 1901년 방문한 사실
  • Jersey 당국 관헌이 1885년 이후 주기적으로 Ecrehos를 방문했고 선박 인입 경사도로, 신호등, 부표 등을 건설한 사실

 

프랑스는 Jersey 섬 당국이 1646년에 Jersey 주민의 Ecrehos 근해에서의 무허가 조업을 금지하였다고 밝히고 이는 Ecrehos를 영국 영토로 여기지 않았다는 근거라고 주장하였으나 재판부는 프랑스의 주장이 조업 금지 사실로부터 추론할 수 있는 자연스럽고 필수적인 것으로 볼 수 없다고 기각하였다. 재판부는 영국이 Ecrehos에 대해 관할권을 행사한 경우에 프랑스가 항의한 사례가 있으나 자신의 영유권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지는 않았으며 1886년 12월 15일 영국 외무성 앞 공한을 통해 비로소 영유권을 주장하였다고 확인하였다.

 

재판부는 위와 같은 사실을 토대로 Ecrehos는 13세기부터 영국 왕이 하사한 Channel Island 봉토의 일부로 취급되어 왔고 14세기 초 이후부터는 계속 영국 왕의 지배 하에 있었으며 영국 왕이 행정권을 행사하였다고 판단하였다. 재판부는 영국 당국이 19세기 대부분과 20세기에 걸쳐 Ecrehos에 국가 권능을 행사하였으나 프랑스는 소유권을 입증할만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였다고 지적하고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Ecrehos의 영유권은 영국에 있다고 결정할 수밖에 없다고 결론지었다(67 page).

 

5) Minquiers 영유권 심리

 

    영국은Jersey 섬 소재 Noirmont 領地 법원이 Minquiers 해역에서의 난파선과 화물 처리 방안에 대해 판결한 사실 및 판결문에 난파 해역이 ‘봉토 안’이라고 적시한 사실(1615년, 1616년, 1617년)을 Minquiers에 대한 영유권 입증 자료 중의 하나로 제출하였다. 재판부는 Minquiers가 Noirmont의 영지가 아니라면 법원의 판결을 설명하기가 어렵다고 인정하였다. 영국은 1692년 Jersey 섬의 왕립 재판소가 1620년 추밀원 서한 및 1632년 법령을 근거로 Minquiers 해역에서 난파된 선박의 화물을 영국 국왕과 Jersey 영주, 구조선 소유주가 3등분하여 나누어 가지라고 판결한 것도 영유권의 근거로 제시하였으나 재판부는 추밀원 서한 및 1632년 법령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영국도 알지 못한다는 점을 들어 위 판결만으로는 영국 영유권을 뒷받침할만한 결론을 도출할 수 없다고 기각하였다. 영국은 1779년 Jersey 항만 당국이 Minquiers 해역에서의 해난 구조 활동에 참가한 선박에게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한 결정도 영유권의 근거로 제시하였으나 재판부는 Jersey 당국이 Minquiers가 Jersey 섬의 일부로 인식했기 때문에서만 보조금을 지급한 것은 아니라고 기각하였다. 영국은 이외에도 아래와 같은 증거를 제출하였다.

 

  • 관할 구역이 Jersey 섬으로 한정된 Jersey 사법 당국이 Minquiers에서 발견된 시체를 검시한 기록(1850, 1938, 1948)
  • 1815년 경 이후 Jersey 주민이 주택을 건설하고 어기에 상주한 사실 및 이들 주민이 Jersey 교구에 신자 등록이 되어 있고 재산세를 납부한 사실
  • Minquiers에서의 부동산 거래 계약서가 Jersey 등기소에 등기된 사실(1896, 1900)
  • 1909년에 Jersey 세관이 Minquiers에 분소를 설치하고 Miquiers를 조사(census) 지역에 포함하였으며 조사 목적을 위해 세관 직원이 1921년 방문한 사실
  • Jersey 당국 관헌이 1888년 이후 주기적으로 방문하여 선박 인입 경사도로, 신호등, 부표 등을 건설한 사실

 

재판부는 위와 같은 사실은 Jersey 당국이 오랜 기간 동안 Minquiers에 대해 통상적인 지방 행정권을 행사하였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인정하였다. 재판부는 Minquiers는 17세기부터 Jersey 섬 내의 Noirmont 영주의 영지 일부로 취급되어 왔으며 영국 당국은 19세기 대부분과 20세기에 걸쳐 국가 권능을 행사하여 온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70 page).

 

프랑스는 Minquiers는 1022년에 노르망디 공작이 몽생미쉘 수도원에 헌납한 Chausey 섬의 부속 도서이고 Chausey가 몽생미쉘 수도원 재산인 것은 1179년 교황 칙령에서도 확인된다고 주장하였다. 재판부는 프랑스 자료는 Chausey 섬 소유 관계 移轉에 관한 것일 뿐 이 사실부터 Minquiers 영유권에 관한 추론을 도출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프랑스는 1831년 Minquiers 해역에서 항로 측량을 실시한 점도 제기하였으나 재판부는 영국은 1813-1815년에 이미 항로 측량을 시행하였다고 일축하였다. 프랑스는 1861년부터 무려 75년간 프랑스가 Minquiers에서 등대를 운영하고 부표를 설치하였으며 1938년 프랑스 총리와 공군부 장관이 부표 점검차 Minquiers를 방문하였고 1939년에 프랑스인이 시정부 보조를 받아 Minquiers에 주택을 건설한 사실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러한 사실이 프랑스의 영유권을 입증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보았다. 부표 설치 행위가 Minquiers에 대한 주권을 행사하겠다는 의도를 나타내거나 국가 권능을 표출하는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언급하였다

 

주영 프랑스 대사는 1820년 6월 12일 영국 외무성 앞 공한을 통해 프랑스 해양부가 작성한 해도를 전달하였는데 이 해도에는 Minquiers가 영국령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프랑스는 양국간 협상 과정 중에 제시된 것이고 합의에 이르지 못했으므로 위 공한을 프랑스를 겨냥하여 원용할 수 없다고 반박하였으나 재판부는 이 해도는 협상을 위한 제안이 아니라 프랑스 대사가 영국 외무성에 전달한 사실의 표명이고 당시 Minquiers에 대한 프랑스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1869년 11월 12일 주 프랑스 영국 대사는 Minquiers에서 발생한 프랑스 어부의 절도 사건에 대해 항의하는 공한을 프랑스 외무성으로 송부하였다. 이 공한에는 Minquiers가 (영국령인) Channel Island의 부속 도서라고 기재되어 있었다. 재판부는 프랑스가 회신에서 절도 사실을 일축하였을 뿐 Minquiers가 Channel Island의 부속 도서라는 서술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하지 않은 점을 주목하였다. 재판부는 Jersey 항만 당국의 Minquiers 방문에 항의하기 위해 프랑스가 송부한 188년 8월 27일자 외교 공한에서 비로소 처음으로 Minquiers가 프랑스 영토라고 주장한 점도 주목하였다. 1920년 프랑스인이 Minquiers에 주택을 건설하는 것에 항의하는 공한을 영국이 송부해오자 프랑스 당국은 아무 회신도 하지 않았으나 공사는 중지시킨 점도 환기하였다(71 page).

 

재판부는 위와 같은 사실로 볼 때 Minquiers에 대한 영유권은 영국에 속한다고 판시하였다.

 


1) Treaty of Lambeth(1217), Treaty of Paris(1259), Treaty of Calais(1360), Treaty of Troyes(1420)

2) 국제재판에서 당사자의 행위가 소송의 쟁점에 영향을 줄 수 없는 일자, 또는 분쟁의 실체적 사실이 발생했다고 말해지는 기간의 終点

3) 권력자가 종교 기관에 땅을 기부하는 중세 유럽 시기 노르만족의 관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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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글은 산업통상자원부 김승호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이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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